콘돔 해야지?
아니, 오늘 괜찮아.
왜?
안전한 날이야.
... 정말?
응.
뜨겁게 타오른다 싶을 때 이렇게 한 번씩 김을 빼는 게 우리의 래퍼토리가 된 지도 꽤 됐다. 이제는 그게 꼭 싫지도 (그렇다고 좋다는 뜻은 아니고) 않지만, 콘돔을 찾고 뜯고 착용하기까지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멍. 때리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익숙해진 ‘김뺌루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피임’을 위해 피임약을 먹어보자며 스스로에게 결심하기까지는 이런 이유가 숨겨져 있을지도.
콘돔 해야 돼.
안 해도 돼.
왜?
나 피임약 먹고 있어.
응?
내가 약 먹는다고 콘돔 안해도 돼 이제.
...
그도 처음엔 완강하게 반대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기가 무섭게 에이, 안돼. 라고 했다. 예상했듯 몸에 좋지 않을 거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이런 반응에 날 걱정하는 당신, 이라며 은근한 감동을 받고는 작은 논쟁조차 벌이지 않고 그 계획을 잠시 미뤘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먹는 피임약에 관심을 뒀다. 애초에는 피임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지만, 생리주기와 생리통, 월경전불쾌장애증후군, 여드름치료 등등 피임약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의 이점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 피임약 복용기: 이 매스꺼움, 혹시 부작용?
그리고 드디어 결심이 섰을 때, 이번엔 그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서 약 복용의 첫 날을 맞았다. 어차피 내 몸은 나의 것,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판단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날 보호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이라는 사실에 의지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피임약은 언제부터 먹은거야?
지난달부터.
괜찮데?
응, 다 알아보고 먹는거지. 이제 피임은 내가 할게~ 걱정 끊어. 으하하.
처음과 다르게 크게 걱정하거나 반대하는 내색이 없다. 워낙 내 결정을 존중해 주는 편이긴 하지만, 언뜻 아, 앞으로 어두컴컴한 방안 구석의 서랍을 허겁지겁 뒤질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해하는 것도 같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믿어 주는 것도 같고.

나처럼 바람 한 점에도 마음이 하늘로 갔다 땅 안에 묻혔다 하는 인간형은,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데 아이가 생기면 그것도 축복이라며 태도로 당당히 섹스를 하는 남자도 멋지고, 네 몸이 내 몸이 아닌데 조심해야 한다며 피임을 위해 어지간히 애를 쓰는 남자도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자에게 기댄 채 몸을 지켜야 할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와 내가 이루고 있듯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믿고 지켜주는 게 최선이 아닐까.
<사랑, 그 환상의 물매>라는 책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조심스럽게 밀쳐두고, ‘피부’와 ‘말’로 연애하라고. ‘피부’와 ‘말’은 연하디 연한 것이니 부디 ‘연하게’ 연애하라고.
이 대목에 빨간 스티커를 붙여 놓고 과연 ‘피부’와 ‘말’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그 뜻을 흐릿하게나마 헤아린 요즘. ‘피부’로 연하게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고 능동적인 ‘피임’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가 아닌 나 와의 사랑을 위해 피임약 복용은 꽤나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피임약 복용 1달째. 나의 선택에 지독한 확신이 든다.
콘돔 해야 돼.
안 해도 돼.
왜?
나 피임약 먹고 있어.
응?
내가 약 먹는다고 콘돔 안해도 돼 이제.
...
그도 처음엔 완강하게 반대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기가 무섭게 에이, 안돼. 라고 했다. 예상했듯 몸에 좋지 않을 거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이런 반응에 날 걱정하는 당신, 이라며 은근한 감동을 받고는 작은 논쟁조차 벌이지 않고 그 계획을 잠시 미뤘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먹는 피임약에 관심을 뒀다. 애초에는 피임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지만, 생리주기와 생리통, 월경전불쾌장애증후군, 여드름치료 등등 피임약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의 이점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 피임약 복용기: 이 매스꺼움, 혹시 부작용?
그리고 드디어 결심이 섰을 때, 이번엔 그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서 약 복용의 첫 날을 맞았다. 어차피 내 몸은 나의 것,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판단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날 보호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이라는 사실에 의지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피임약은 언제부터 먹은거야?
지난달부터.
괜찮데?
응, 다 알아보고 먹는거지. 이제 피임은 내가 할게~ 걱정 끊어. 으하하.
처음과 다르게 크게 걱정하거나 반대하는 내색이 없다. 워낙 내 결정을 존중해 주는 편이긴 하지만, 언뜻 아, 앞으로 어두컴컴한 방안 구석의 서랍을 허겁지겁 뒤질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해하는 것도 같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믿어 주는 것도 같고.
Touch by Marrie Bot
나처럼 바람 한 점에도 마음이 하늘로 갔다 땅 안에 묻혔다 하는 인간형은,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데 아이가 생기면 그것도 축복이라며 태도로 당당히 섹스를 하는 남자도 멋지고, 네 몸이 내 몸이 아닌데 조심해야 한다며 피임을 위해 어지간히 애를 쓰는 남자도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자에게 기댄 채 몸을 지켜야 할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와 내가 이루고 있듯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믿고 지켜주는 게 최선이 아닐까.
<사랑, 그 환상의 물매>라는 책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조심스럽게 밀쳐두고, ‘피부’와 ‘말’로 연애하라고. ‘피부’와 ‘말’은 연하디 연한 것이니 부디 ‘연하게’ 연애하라고.
이 대목에 빨간 스티커를 붙여 놓고 과연 ‘피부’와 ‘말’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그 뜻을 흐릿하게나마 헤아린 요즘. ‘피부’로 연하게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고 능동적인 ‘피임’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가 아닌 나 와의 사랑을 위해 피임약 복용은 꽤나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피임약 복용 1달째. 나의 선택에 지독한 확신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