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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중학교 일기장에도 써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무살이 넘으면 찾을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은 지금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이건 사실 너무 당연 한 일. 사랑이라는 것이 본래 답이 없이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일 거다.
 
인류는 '사랑'이라는 그것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리고 정의 내린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또 누군가는 소설로, 영화로 그리고, 그림으로. 실체를 알 수 없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사랑이 주는 설렘'을 쫒아 오늘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린비 출판사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천번쯤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책.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대상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 더 젋게는 이 세계와의 공존을 기획하는 일이다. 이 공존에서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자신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삶의 창조,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영역이다.

"언제나 그 스스로가 농사 짓는 농부가 되라, 이 존재세계의 인(因)이 되어라. 주인이 되라." 우리 모두가 인(因)이 될 때, 이 인과 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걸 인연(因緣)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인연, 이거는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거나 인연이 넘었다, 인연이 끝났다 그럽니다. 그래서 인연이 성숙되지 않은 중생은 부처도 구제하지 못한다 그러죠. 사무치게 한 번 생각해 몹시다. 연(緣)이 되지 말고, 인(因)이되라는 소리. 이게 바로 '닦는다'는 개념입니다. (농담, '삶과 수행')

고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혼자 갈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무치게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니.

- 고미숙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내가 과연 사랑을 하고 싶은건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 같다. 설렘 이상의 감정이 점철된 관계, 하나이자 둘 일 수 있고 둘이자 하나일 수 있는, 함께 하지만 가장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나의 지지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판적일 수 있는 관계. 나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 하고 싶은거고, 아니라면 사랑이 아닌 그 무엇(대체어가 필요한?)이겠지.

어쨌든 이런 생각 가지고는 연애 못한다는 거.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런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 싶어 기다려본다. 넌 어딨니?


Posted by 슈테른


콘돔 해야지?
아니, 오늘 괜찮아.
왜?
안전한 날이야.
... 정말?
응.


뜨겁게 타오른다 싶을 때 이렇게 한 번씩 김을 빼는 게 우리의 래퍼토리가 된 지도 꽤 됐다. 이제는 그게 꼭 싫지도 (그렇다고 좋다는 뜻은 아니고) 않지만, 콘돔을 찾고 뜯고 착용하기까지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멍. 때리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익숙해진 ‘김뺌루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피임’을 위해 피임약을 먹어보자며 스스로에게 결심하기까지는 이런 이유가 숨겨져 있을지도.

콘돔 해야 돼.
안 해도 돼.
왜?
나 피임약 먹고 있어.
응?
내가 약 먹는다고 콘돔 안해도 돼 이제.
...


그도 처음엔 완강하게 반대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기가 무섭게 에이, 안돼. 라고 했다. 예상했듯 몸에 좋지 않을 거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이런 반응에 날 걱정하는 당신, 이라며 은근한 감동을 받고는 작은 논쟁조차 벌이지 않고 그 계획을 잠시 미뤘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먹는 피임약에 관심을 뒀다. 애초에는 피임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지만, 생리주기와 생리통, 월경전불쾌장애증후군, 여드름치료 등등 피임약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의 이점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 피임약 복용기: 이 매스꺼움, 혹시 부작용?

그리고 드디어 결심이 섰을 때, 이번엔 그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서 약 복용의 첫 날을 맞았다. 어차피 내 몸은 나의 것,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판단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날 보호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이라는 사실에 의지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피임약은 언제부터 먹은거야?
지난달부터.
괜찮데?
응, 다 알아보고 먹는거지. 이제 피임은 내가 할게~ 걱정 끊어. 으하하.


처음과 다르게 크게 걱정하거나 반대하는 내색이 없다. 워낙 내 결정을 존중해 주는 편이긴 하지만, 언뜻 아, 앞으로 어두컴컴한 방안 구석의 서랍을 허겁지겁 뒤질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해하는 것도 같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믿어 주는 것도 같고.

Touch by Marrie Bot


나처럼 바람 한 점에도 마음이 하늘로 갔다 땅 안에 묻혔다 하는 인간형은,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데 아이가 생기면 그것도 축복이라며 태도로 당당히 섹스를 하는 남자도 멋지고, 네 몸이 내 몸이 아닌데 조심해야 한다며 피임을 위해 어지간히 애를 쓰는 남자도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자에게 기댄 채 몸을 지켜야 할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와 내가 이루고 있듯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믿고 지켜주는 게 최선이 아닐까.

<사랑, 그 환상의 물매>라는 책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조심스럽게 밀쳐두고, ‘피부’와 ‘말’로 연애하라고. ‘피부’와 ‘말’은 연하디 연한 것이니 부디 ‘연하게’ 연애하라고.
 
이 대목에 빨간 스티커를 붙여 놓고 과연 ‘피부’와 ‘말’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그 뜻을 흐릿하게나마 헤아린 요즘. ‘피부’로 연하게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고 능동적인 ‘피임’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가 아닌 나 와의 사랑을 위해 피임약 복용은 꽤나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피임약 복용 1달째. 나의 선택에 지독한 확신이 든다.







Posted by 애플's

'피임'. 입에 올리기 쉽지 않은 단어.

피임에 대해 그렇다더라 저렇다더라 하는 얘기는 들었지만,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해보거나 확실하게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 여자 친구들끼리도 말하기가 쉽지 않고, 남자들과의 대화는 더더욱 어려운. 그래서 그냥 확인되지 않은 대략적인 정보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지'하며 살아간다 . 나같은 사람이 많은 탓에,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어떤 이들은 낙태를 감행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실 조금만 알면 더 현명하게 살 수 있는데, 그걸 알면서도 또 그냥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Wise Woman's night Party 가 열린 잠원동 '프라비아



우연한 계기가 찾아와 세계 피임의 날 기념 행사에 다녀왔다. Wise Woman's night Party! 현명한 여자가 되기 위한 유익한 토크쇼와 파티가 준비된 자리였다. 아무래도 파티 때는 가수들의 공연(쿨, 샤이니)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반응이 뜨거울거라 생각했지만, 토크쇼는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행사장 입구. 멋지다. @.@



부대행사로 바디 페인팅을 해주고 있다


손정민씨의 사회로 진행된 토크쇼에서는 와이즈우먼 홍보대사인 비앙카와 산부인과 전문의 등이 나와 피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손정민씨의 매끄러운 진행 덕도 컸던 것 같다.
 

비앙카님이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요즘도 오빠 믿는 사람 있느냐'는 것. ㅎㅎㅎ 얘기의 요점은 오빠들을 믿을 수 없으니 여성들이 피임을 하자는 아니었고, 피임이라는 것이 어느 한쪽의 의무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언제나 실패율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피임이 잘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하고,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특히 여성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먼저 챙겨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새롭게 알게된 사실은 피임약을 복용이 성공률이 여러가지 피임법 중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었다. 부작용이나 그동안 들어왔던 소문들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참 많은 오해가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물론 약이라는 것이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건 두통약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에 몸에 맞게 처방 받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나 싶다. ^^

유용한 정보를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이야기 하는 자리여서 좋았고, 항상 그늘에서 이야기했던 주제를 이렇게 밖으로 꺼내 밝게 풀었다는 것도 참 좋았다. 큰 규모로 자주 진행되기는 어렵겠지만 종종 이렇게 유쾌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파티가 열리기를 기대해본다.

토크쇼 뒤에 이어지는 파티에서는 쿨과 샤이니의 축하 공연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 자리만큼이나 언제나 밝은 '쿨'. 이 나이에 오랜만에 연예인 보면서 좋아했다. 체면 차리느라 소리를 지르진 못했지만. ㅋ 친구 생일 파티 일정이 있어 '샤이니'는 못보고 왔음. 사실 나는 얼굴도 잘 모르는.. --;;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

유쾌한 쿨의 공연!


그동안 뛰었던 행사중에 가장 난감한 행사라던 쿨.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며..^^;;


Posted by 슈테른

Virgin, Gustav Klimt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이었다. 그 날은 사복을 입도록 허락된 수요일, 나는 엷은 색 청바지를 입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배가 아파왔다. 그건 정말 이상하게, 아픈 거였다.

배가 아파...왜 이렇게 아프지... 똥배는 아닌데...
아파...아파.


육고를 건너고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모호한 위험스런 길을 지나와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그대로 뻗어 누웠다. 배를 꾹꾹 눌러도 보고 뒹굴어도 봤지만 계속계속 아팠다. 이상해..이상해...


묵직한 통증이었다. 그간엔 느껴보지 못한 배탈 이었다. 허리도 뻐근한 거 같았고 기분도 나빴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려면 밤 9시는 넘어야 했다. 아무 방법 없이 이 생경한 아픔을 스스로 견뎌야만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잠깐 고개를 돌렸던가. 언뜻, 벗어 놓은 청바지에 비친 붉은 자국이 보였다.

어! 이건 뭐지? 뭐가 여기 묻었지? 뭘 잘못 깔고 앉았나?


그 날을 더듬어 보면 난 참 더디게도 그것이 월경의 시작임을 눈치 챘다. 그도 그럴 것이 월경이 이맘때쯤 올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학교에서 알려주는 성교육 수업 시간이 있었지만 열심히 듣지 않았고, 그러기엔 내용이 지나치게 고리타분했었다.

어쨌든, 놀란 마음 가라앉힐 새도 없이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젊고 건장한 점원오빠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그 젊은 오빠를 보자 도무지 생리대를 가지고 계산대에 올려놓을 자신이 없었다.


나도 여자라고. 이건 여자에게 필수 용품이라고.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아, 안 돼. 난 너무 어리잖아. 아, 저 오빠보기 너무 창피해!! 


두 심정이 마구 교차됐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생리대를 집었다. 쭈뼛쭈뼛 계산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계산을 마쳤다.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점원오빠의 행동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설마, 저 오빠... 부끄러워하는 날 배려한 걸까. 반신반의하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곤.. 그것을 속옷 위에 깔고 비밀스러운 밤을 맞고 조용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두 번째 그 다음... 그 후로도 여러 번 생리가 진행될 동안 난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생리대도 봉지에 싸서 집 밖에다 버렸다. 그런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생리’하는 것 자체가 시종일관 부끄러웠고 또 어쩌면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굳이 유난을 떨 필요가 있을까 라고 어린 나 혼자서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 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번 붉은 출혈을 본다. 첫날과 같이 요통을 동반한 이상한 배 아픔을 겪는다. 가끔은 화가 솟구칠 만큼 신경이 날카로워 지기도 하고 어쩔 땐 참 미안한 마음으로 1년에 두 세번 정도만 생리를 하는 생리 불순인 친구를 부러워도 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한 번쯤은 안하고 건너뛰고 싶다가도 그저 일상의 하루쯤으로 별일 아는 듯 받아들이면서.

생리 주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Gustav Klimt


최근, 피임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바로 생리 주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지금 미국에서는 세 달에 한번만 생리를 할 수 있도록 짜인 피임약 세트가 한창 유행이다.

이미 피임약 복용 인구가 50%를 넘긴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이 두 쪽 나도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그 날을 (물론 나의 자궁이 건강하다는 몸의 반응이긴 하지만) 건강상 아무 문제없이 건너 뛸 수 있다는 건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피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리 주기를 결정해 두 달에 한번 혹은 세 달에 한번만 생리를 선택해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그 길을 걸어가 보고 싶다.

지난 9월 이후 쭉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지금 계획은 휴약기를 두지 않고 (내가 복용 중인 ‘야즈’의 방식이라면 약 복용 25일 이후부터 나흘간의 위약 4알을 먹지 않고) 10월까지 쭉 피임약을 복용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내 생에 첫 생리 없는 가을을, 10월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의학상 피임약을 복용함으로써 2, 3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 까지도 생리를 하지 않아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한다. 걱정 없이 도전해 볼만 하다는 뜻이다.


이제껏 생리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몸의 신호였다. 그렇다면 몸의 신호에 오롯이 의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리 주기를 스스로 정하고 생리와 피임의 능동적인 방식을 선택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용기를 내야 하는 첫 도전임은 확실하지만, 지금의 나의 선택과 도전 덕분에 내 몸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주체적 여성으로써 내 몸과 한껏 가까워진 기분도 든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꼼짝없이 당해야 했던 생리주기로부터의 탈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카운트 다운... 얼마 남지 않았다.


Posted by 애플's




오늘 밤, 훈남과의 데이트만큼이나 기다려졌던 파티 TONIGHT.
뭘 입고갈까...음냐음냐 ~

은밀한 쪽으로는 친숙해도 꺼내놓고 발음하기 왠지 어색한 ‘피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의 지성인이 서울 하늘 아래로 모이는 날, 바로 오늘 저녁 8시. 서울 잠원동 한강 시민공원 내 프라디아에서 ‘세계피임의 날’을 기념한  <Wise Woman's Night>
파티가 열린다.

‘세계피임의 날’(WCD; World Contraception Day) 은 인공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줄이고자 국제 성출산건강기구인 마리스톱스인터내셔널(MSI)를 비롯해 유럽피임협회(ESC), 국제소아청소년부인과연합(FIGIJ), 아태피임협의회(APCOC) 등이 주축이 되어 2007년 9월 26일 출범했다.

오늘 열리는 <Wise Woman's Night>
파티에서는 '피임’을 주제로 한 유쾌한 토크쇼가 펼쳐진다. 미국 UCLA 의대 산부인과 전문의 안드레아 랩킨(Andrea Rapkin) 교수, ‘Wise Woman’ 캠페인 홍보대사 ‘비앙카(Vianca)’ 강남 차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심성신’ 교수 등이 패널로 참석해, 건강한 성생활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보다 피임에 한발 앞선 선진국의 전문가들이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을지 벌써부터 자못 기대가 된다. 오랜 기간 고민 끝에, 자유롭고 즐거운 성생활을 위해, 안전한 피임을 위해, 기타 등등 몇 가지 이유 등을 더해 피임약 복용하기 시작한 내게 또 하나의 자극제가 될 만한 유용한 정보들이 쏟아지길 바라본다.

나뿐 아니라, 응급 피임약 판매량이 꽤나 높은 우리나라에서 뜨겁게 사랑하며 사는 청춘 남녀들이 뜻하지 않은 임신에 놀라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 이 파티의 취지와 목적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토론이 끝나고, ‘쿨’과 ‘샤이니’의 공연이 이어지고 나면 광란이 댄스 파티가 펼쳐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에 누군가는 첫 눈에 폭 빠지는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즐겁고 안전한 피임과 한께 한 멋진 하룻밤을 응원한다.


Posted by 애플's
여고생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 같이 분명하게 ‘노는’날이 다가올 때면 생리를 늦추는 약을 찾아 먹는 친구들이 있었다. 때론 아랫배를 드릴로 뚫는 거 같은 고통을 그 날 하루만큼은 피해보고 싶은 간절함에 내린 결정이었을 거다.

그만큼 ‘생리’는 즐거운 하루에 큰 방해꾼이다. 성인이 된 후로도 여전히 한 달에 3-4일 때론 1주일 이상 씩 이어지는 배 아픔과 등 아픔, 불쑥불쑥한 신경질, 덩달아 끝을 모르고 치솟는 생리대의 가격 등은 육체적인 고단함을 넘어 정신적, 경제적으로 부담을 안긴다. 가끔은 억울한 느낌마저 드는 거부할 수 없는 여자의 일상이랄까.

지난 주, 오랫만에 만난 친구는 12월 결혼을 앞두고 바로 그 결혼식 날이 꼭 생리일과 겹친다며  ‘약’을 챙겨 먹어야 할지를 물어왔다. 글쎄... 아름다운 신부의 흰 웨딩드레스와 붉은 출혈. 환상의 앙상블은 아니지만 ‘약’ 복용을 적극 추천하진 못했다. 신부의 불편한 몸(마음)가짐이 불 보듯 뻔하지만 그 하루 때문에 생체리듬을 뒤흔들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였다.

사실 나야말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생리를 늦춰주는 영리한 ‘약’이 피임약이라는 사실을 안 이상, 그것을 지속적으로 복용해 볼까를 심사숙고 하고 있었다. 그 고민의 시작은 당연하게 ‘안전한 피임’에 있지만, 생리통과 월경 전증후군 (불안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손발이 붓는 등의) 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콘돔으로부터 해방된 아름다운 잠자리를 위해, 그리고 어쩌면 더 고운 피부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피임약을 복용해 보기로 조금씩 마음의 가닥을 잡아갔던 참이었다.

내 나이 서른 해, 첫 피임을 시작하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회사 근처 산부인과에 들러 피임약 처방을 받았다. 의사는 약에 적응하기 까지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호르몬의 변화가 이루어질 때 미세한 불편함이 올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드디어 내 생에 첫 피임약의 복용. 사실 그간 꽤 긴 고심이 이어졌던 건 세간에 퍼져있는 약의 부작용에 대한 소문들에 겁을 먹은 탓도 있다. 임신이 잘 안된다더라 암에 걸린다더라 구토증상이 있다더라.... 같은.

하지만 피임약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런 소문들이 오해에 불가하다는 걸 조금씩 깨치게 되었다. 우선 피임약을 복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임신 확률은 비슷하다. 불임이나 기형아 출산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 역시 WHO에서 확증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피임약은 도리어 암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난소암의 경우, 피임약을 5개월만 복용해도 40% 이상의 난소암 예방 효과가 있고,  5년 이상 복용시에는 난소암 발병률이 60% 가까이 감소한다. 자궁내막암 역시 비슷한 수치의 예방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그러니까 피임약은 일종의 호르몬제라는, 그리고 그 호르몬이 몸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아 정확한 역할을 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이롭다라는 사실만 간과하지 않는다면 걱정은 뚝 그쳐도 되는 거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호르몬 조절로 얻을 수 있는 이점들, 예를 들어 여드름 치료 또는 다이어트 등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내가 선택한 피임약 ‘야즈’는 피임은 물론, 월경 전 불쾌장애 증상 치료제임과 동시에 여드름 치료제로도 승인을 받았다. 이 말은 곧, 여드름 걱정이 없는 내게 피지 조절을 어쩌면 두피까지도 한결 고와질 수 있다는 뜻이다. 오호라....

복용 둘째 날, 맞닥뜨린 매스꺼움?

‘야즈’는 24+4=28 즉, 24일 동안 분홍색 정제를 4일 동안 흰색 정제를 빼먹는 방식이다. 생리주기에 맞춰 28일간 분홍약 다음 흰약을 꾸준히 먹는다. 다음 28일도 마찬가지.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이 방식은 월경 주기를 규칙적으로 해주고 피임약 복용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똘똘함을 갖췄다.

복용 첫날. 저녁을 양껏 먹고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약 한 알을 목구멍에 흘려 넘겼다. 이어 깊은 수면... 걱정한 이상 반응은 없었다.

복용 이튿날. 전 날과 다르게 아침 출근 전 물 한잔과 함께 약을 복용했다. 자기 전 혹시 깜빡 할까봐 애써 부지런을 떨겠다며 내린 결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오전 매스꺼움을 느꼈다. 약간의 어지럼증과 체한 증상과 비슷한 더부룩함도 왔다. 오후가 되자 차츰 잦아든 증세는 복용 초기에 주로 보이는 호르몬 적응을 위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약 복용 전 의사 상담 시 설명을 들은 바 있어 크게 놀라진 않았다.  새로운 주기를 받아들여 배란을 막기 위해  준비를 다지고 있다는 몸의 반응이었다. 

피임약 복용을 결정하고서 왠지 모를 가뿐하고 상쾌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것이 위험천만했던 젊은 날로부터 벗어나는 강력한 자극과 같았다. 몸을 주체적으로 읽고 능동적 방식의 피임 세계에 들어선 첫 날. 드디어 콘돔과 작별, 적극적인 사랑, 내 몸의 건강한 변화... 이런 것들이 하나 둘 그려지면서 어떤 해방감이 가슴에 꾹꾹 찼다.

아, 내 결정에 후회 없기를...

피임약 복용을 준비하는 여성들을 위한 작은 TIP

하나. 의사의 처방이 반드시 필요하다. (초기 부장용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둘.. 피임약은 식사와 상관은 없지만, 경험 상 빈 속 보다는 든든한 상태가,
      이른 아침보다는 잠자기 전이 (복용 초기에는) 더 낫다.
셋.. 흡연자(하루 2갑 이상), 고혈압자 등은 신중하게 투여해야 한다. (역시 의사와 상담이 필요한 부분이다.)






Posted by 애플's

정말 딱 한 번의 키스만 한다면 더 이상 아쉽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살면서 몇 번은 마주친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이 자리가 아니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그럴 땐 정말 대놓고 묻고 싶다. Shall we kiss?

키스가 사랑하는 연인들만의 전유물도 아니거니와, 키스로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혹은 하지 말아야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까짓거 그냥 눈 딱 감고 입을 맞추는거다. 왜?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오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가벼운 키스쯤 무엇이 두렵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제 그렇게 해 본 적은  없다. 언젠가 어디선가 이런 순간이 또 온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두 주먹 불끈쥐며 영화같은 그 순간을 상상해볼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 프랑스 영화 '쉘위키스'를 보며 깜짝 놀랐다. 키스는  해보기 전에는 '가벼운지 무거운지 알 수 없다'는 영화 속 대사.  머리로 알고 몸으로 아는 그것을 내가 깜빡 잊고 살고 있었다. Shall we kiss? 라는 이 질문이 얼마나 위험한 질문인지,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키스가 가져올 엄청난 파장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사실은 지루한 삶의 큰 사고 하나쯤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Shall we kiss? 그 위험한 질문. 아무한테나 하지 말아야지. : )




 

Posted by 슈테른

하하하 응원클래스, 리폼 교실에 다녀왔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안내도 잘되어있고 차편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리푬교실 장소까지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었다. ^^


미싱을 사용해 바느질을 해야한다니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실생활에서 활용하게 쉬운 리폼클래스였던지라 매우 실용적인 정보였다. 블로거 데코트리님이 쉽게 설명해 주시고, 제작 과정 일일이 보여주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쉽게 따라 갈 수 있었다. : )



열강중인 데코트리님..




데코트리님의 시연 장면..
마법의 손 같다. 샤삭샤삭~~~




하나라도 놓칠새라.. 집중, 또 집중~~





그리고, 하얀 미싱...
예쁘고 탐났다. ^^



클래스 내내 진행하시는 분들인지 중간중간 옆에서 작은것까지 도와주고 배려해줘서 고맙고 참 좋았다. 다만 재봉틀을 처음 써보는 나로써는 좀 어려워서,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는게 쉽지 않았다. 흑흑.



아, 어설프다. ㅎㅎ




그래도 열심히 미싱을 돌리다 보니.....





대략적인 모양이 나오기 시작....





쨘, 완성품이다!! ^^



재미난 클래스였고, 다 만들고나니 보람도 있었다. ^^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물건을 기부한다는데 의미도 있었고.... 상큼한 여름에 누군가 내가 만든 가방을 예쁘게 잘 사용했음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집에서도 꼭 한 번 다시 만들어 봐야지~ (하지만, 미싱은?? ㅜㅜ )

암튼 행사 진행하셨던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또 이런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아.. 보람찬 하루. 라라라...


Posted by 쉐네스
"발렌타이 데이에 뭐했어"
"여자친구한테 속옷 선물하고.. 음.. 뜨거운 밤을 보냈어요. 헤헤" 


당당하게 사랑을 재잘거리는 20대 중반의 청년. A의 얼굴은 언제나 생글생글하다. 현재 진행형의 사랑 때문일까. 그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 뜨거운 첫. 사.랑.을 묻고 들었다.
소주 한 병쯤 비워졌을까. 애기는 만남과 설렘을 지나 뜨겁고 숨가뿐 절정의 시간으로 까지 번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 콘돔은 기본이야! 남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킴!

여자를 위해서도 먼저 꼭 챙겨 해야 하는 거야.


정색하는 내게 A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콘돔도 싫다는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본능적인 건데…
몸이 말하는 거니까 나쁘게 생각할 건 아니에요. 누나.


사랑이 어디 마음만으로 되나. 마음을 나누면 몸을 나누고 싶고 그 다음엔 느끼고 싶고 그러고 나면 한도 끝도 없이 만져주고 싶은건데. 콘돔이라는 것이 이런 사랑의 본능을 멈칫 하게 해 흐름이 끊고 흥분을 가라앉힌다면… 그렇지. 별로겠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남자의 본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어 어쩌면 콘돔보다는 먹는 피임약이 더 현명한 피임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에이, 그래도 피임약은 안 먹었음 해요. 아니 먹지 말라고 할거에요. ... 

왜?

음.. 그냥요. 몸에 나쁠거 같아요...

에이.. 너무 막연하다 야. 건강이랑 밀접하다고 여기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아. 나중에 임신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라는 얘기가 있긴 한데 사실 호르몬 성분이 약을 복용하는 주기에만 작용하니까. 오히려 생리 주기가 맞춰진다거나 생리통이 잦아든다거나 하는 효과가 있다든데. 장기복용하면 난소암 예방효과도 있고. 외국애들은 습관처럼 먹는댔어. 평균 복용 기간이 9년인가 그래.  우리는 아직 낯설어서 선입견이 좀 있지.

아, 그래요? 내가 너무 몰랐네...

먹는 피임약은..사실 건강을 언급했지만.. 네 안에 다른 거부감이 있을지도 몰라.  음..
심정적인 부분 있잖아. 예를 들면.. 그래, 몇 년 전부터 네 여자친구가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면.. 이런 거. 이건 만약 그렇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약간 서운할 수도 있으니까.

과장이 심한 예잖아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는 거 다 알고 또 나도 그랬고 뭐 문제될 거 있나. 솔직히 아쉽지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 그냥 모르는 척 해야죠.

그래, 그 아쉬움말이야. 나도 그런 느낌을 가졌을 때가 있었거든. 아직 성에 개방적이지 않은 사회고 또 날 선 시선들이 곳곳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 같기도 하고 말야.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내 예전 애인은 책상 서랍에 콘돔이 몇개 있었거든. 근데 없는 척 하고 새로 사오고 하드라고. 난 우연히 봤는데 그냥 못본척 했어.  괜히 콘돔 보이면 실망할까봐 숨기는 것도 있을 거고 쉬워보일까봐 조심하는 거 같기도 해서. 나도 동감하니까. 같은 맥락에서 먹는 피임약도 복욕한다는 사실을 애인한테 알리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할거야.


사랑, 그리고 잠자리와 피임에 대한 얘기들이 오래, 길게, 깊게 이어졌다. 그리고 더욱 더 선명하고 뚜렷한, 피임약보다도 콘돔보다도.. 중요한 지점이 보였다. 바로...

지금 A는 '만약에..'라는 가정을 대입하기 곤란할만큼 운명과 같은 사랑하고 있다는 거다.  


사랑을 '맺'거나 '이루지' 않고 '빠진다'라고 하는 건 사랑을 하는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집어 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끝나면 그 동안 빠트린 잡동사니들을 다시 챙겨 주워 담아야 한다. 하지만 암만 다 챙긴다고 해도 건지지 못하고 흩어진 것이 남기 마련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탓에 그 다음 또 다음의 사랑은 처음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A에게 지금 사랑이 뜨거운만큼 다음 사랑은 서늘할 거라는 예감 따윈 전하지 않았다. 나도 꼭 저만큼 뜨겁고 기억마저 따뜻한 첫 사랑이 있으니까. 그때는 누가 뭐라한들 다음 사랑 같은 건 염두하지 않았으니까.


Posted by 애플's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그냥 걸레로 닦아 버리고 앞으로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기억이 없을 수는 없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까지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 이성에 눈뜨기 -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이 이때부터니까 -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늦겠다며 엄마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는데, 그래도 내가 꼼짝하지 않자 엄마는 내가 덮은 이불을 확 걷어버렸다. 너무나 평화롭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다. 또!

화가 난 엄마는 마구 야단을 쳤고, 어깨였던가 등이었던가…., 아무튼, 내가 몇 대 맞았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이대로 엄마한테 회초리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2층 주인집 할머니에게 가서 소금을 받아올 것인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매가 무서웠던 나는 소금을 받아오는 일이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금을 받아 오겠다고 대답했다.

@시공 주니어 / 이런 책도 있네.. --;;

엄마는 키 대신 주홍색 바가지를 머리에 얹어주고 얼른 다녀오라고 재촉했고, 나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는 채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우느라고 할머니에게도 제대로 못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을 보고 호호 웃으며 얼른 소금을 내주었다. 그리고 내 몸에 뿌리기까지 했다. 그래야 다음에 안 그런다나 뭐라나.

할머니에게는 잘생긴 손자가 하나 있었다. 우식이 오빠라고. 나보다 4~5살 정도 많았는데, 쭉 빠진 다리와 날카로운 눈매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10살 때 기억임.) 어쩌다 등굣길에 오빠를 만나게 되면 같이 가자고 쫄래쫄래 따라가곤 했는데, 그런 내가 부끄러웠는지 따라붙을수록 걸음을 빨리하곤 했었다. 나는 끊임없이 "우식이 오빠! 같이 가!"를 외치며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내디뎠지만, 학교가 가까워질 때면 오빠는 이미 저만큼 멀어져서 150미터쯤 앞서 있었다. 멋진 우식이 오빠가 바로 옆 중학교로 우회하는 뒷모습을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우식이 오빠가 있는 2층에 가서 이불에 오줌쌌다고 소금을 받아 온 것이다. 엄마한테 맞는 게 무서워서 - 진짜 매움 - 소금 받아오기를 택한 것인데,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를 보는 순간 후회했다. 아, 우식이 오빠가 있었지. 제발 날 보지 않기를!

우식이 오빠가 그런 나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재미난 사건이 2층 집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후회된다. 이 한 몸 잠시 회초리로 버티고 말 것을 나는 왜 소금을 받아오겠다고 했는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 엄마는 소금 효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우식이 오빠 효과' 다. 엄마한테 맞기도 싫고, 바가지를 쓰고 우식이 오빠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말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날로 잠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고 싶다. 엄마가 자주 애용했던 기다란 구둣주걱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우식이 오빠! 저랑 나란히 등교 한 번만 해요. 네?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