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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응원클래스, 리폼 교실에 다녀왔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안내도 잘되어있고 차편까지 마련되어 있어서 리푬교실 장소까지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었다. ^^


미싱을 사용해 바느질을 해야한다니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실생활에서 활용하게 쉬운 리폼클래스였던지라 매우 실용적인 정보였다. 블로거 데코트리님이 쉽게 설명해 주시고, 제작 과정 일일이 보여주면서 진행했기 때문에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쉽게 따라 갈 수 있었다. : )



열강중인 데코트리님..




데코트리님의 시연 장면..
마법의 손 같다. 샤삭샤삭~~~




하나라도 놓칠새라.. 집중, 또 집중~~





그리고, 하얀 미싱...
예쁘고 탐났다. ^^



클래스 내내 진행하시는 분들인지 중간중간 옆에서 작은것까지 도와주고 배려해줘서 고맙고 참 좋았다. 다만 재봉틀을 처음 써보는 나로써는 좀 어려워서,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는게 쉽지 않았다. 흑흑.



아, 어설프다. ㅎㅎ




그래도 열심히 미싱을 돌리다 보니.....





대략적인 모양이 나오기 시작....





쨘, 완성품이다!! ^^



재미난 클래스였고, 다 만들고나니 보람도 있었다. ^^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물건을 기부한다는데 의미도 있었고.... 상큼한 여름에 누군가 내가 만든 가방을 예쁘게 잘 사용했음 좋겠다. 기회가 된다면 집에서도 꼭 한 번 다시 만들어 봐야지~ (하지만, 미싱은?? ㅜㅜ )

암튼 행사 진행하셨던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리고, 또 이런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아.. 보람찬 하루. 라라라...


Posted by 쉐네스
"발렌타이 데이에 뭐했어"
"여자친구한테 속옷 선물하고.. 음.. 뜨거운 밤을 보냈어요. 헤헤" 


당당하게 사랑을 재잘거리는 20대 중반의 청년. A의 얼굴은 언제나 생글생글하다. 현재 진행형의 사랑 때문일까. 그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그 뜨거운 첫. 사.랑.을 묻고 들었다.
소주 한 병쯤 비워졌을까. 애기는 만남과 설렘을 지나 뜨겁고 숨가뿐 절정의 시간으로 까지 번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 콘돔은 기본이야! 남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킴!

여자를 위해서도 먼저 꼭 챙겨 해야 하는 거야.


정색하는 내게 A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콘돔도 싫다는 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본능적인 건데…
몸이 말하는 거니까 나쁘게 생각할 건 아니에요. 누나.


사랑이 어디 마음만으로 되나. 마음을 나누면 몸을 나누고 싶고 그 다음엔 느끼고 싶고 그러고 나면 한도 끝도 없이 만져주고 싶은건데. 콘돔이라는 것이 이런 사랑의 본능을 멈칫 하게 해 흐름이 끊고 흥분을 가라앉힌다면… 그렇지. 별로겠다. 미처 헤아리지 못한 남자의 본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어 어쩌면 콘돔보다는 먹는 피임약이 더 현명한 피임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에이, 그래도 피임약은 안 먹었음 해요. 아니 먹지 말라고 할거에요. ... 

왜?

음.. 그냥요. 몸에 나쁠거 같아요...

에이.. 너무 막연하다 야. 건강이랑 밀접하다고 여기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아. 나중에 임신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라는 얘기가 있긴 한데 사실 호르몬 성분이 약을 복용하는 주기에만 작용하니까. 오히려 생리 주기가 맞춰진다거나 생리통이 잦아든다거나 하는 효과가 있다든데. 장기복용하면 난소암 예방효과도 있고. 외국애들은 습관처럼 먹는댔어. 평균 복용 기간이 9년인가 그래.  우리는 아직 낯설어서 선입견이 좀 있지.

아, 그래요? 내가 너무 몰랐네...

먹는 피임약은..사실 건강을 언급했지만.. 네 안에 다른 거부감이 있을지도 몰라.  음..
심정적인 부분 있잖아. 예를 들면.. 그래, 몇 년 전부터 네 여자친구가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다면.. 이런 거. 이건 만약 그렇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약간 서운할 수도 있으니까.

과장이 심한 예잖아요. 만약 그렇다고 해도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있다는 거 다 알고 또 나도 그랬고 뭐 문제될 거 있나. 솔직히 아쉽지만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 그냥 모르는 척 해야죠.

그래, 그 아쉬움말이야. 나도 그런 느낌을 가졌을 때가 있었거든. 아직 성에 개방적이지 않은 사회고 또 날 선 시선들이 곳곳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 같기도 하고 말야.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내 예전 애인은 책상 서랍에 콘돔이 몇개 있었거든. 근데 없는 척 하고 새로 사오고 하드라고. 난 우연히 봤는데 그냥 못본척 했어.  괜히 콘돔 보이면 실망할까봐 숨기는 것도 있을 거고 쉬워보일까봐 조심하는 거 같기도 해서. 나도 동감하니까. 같은 맥락에서 먹는 피임약도 복욕한다는 사실을 애인한테 알리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할거야.


사랑, 그리고 잠자리와 피임에 대한 얘기들이 오래, 길게, 깊게 이어졌다. 그리고 더욱 더 선명하고 뚜렷한, 피임약보다도 콘돔보다도.. 중요한 지점이 보였다. 바로...

지금 A는 '만약에..'라는 가정을 대입하기 곤란할만큼 운명과 같은 사랑하고 있다는 거다.  


사랑을 '맺'거나 '이루지' 않고 '빠진다'라고 하는 건 사랑을 하는 동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집어 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끝나면 그 동안 빠트린 잡동사니들을 다시 챙겨 주워 담아야 한다. 하지만 암만 다 챙긴다고 해도 건지지 못하고 흩어진 것이 남기 마련이다. 그렇게 잃어버린 탓에 그 다음 또 다음의 사랑은 처음과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A에게 지금 사랑이 뜨거운만큼 다음 사랑은 서늘할 거라는 예감 따윈 전하지 않았다. 나도 꼭 저만큼 뜨겁고 기억마저 따뜻한 첫 사랑이 있으니까. 그때는 누가 뭐라한들 다음 사랑 같은 건 염두하지 않았으니까.


Posted by 애플's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그냥 걸레로 닦아 버리고 앞으로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기억이 없을 수는 없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까지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 이성에 눈뜨기 -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이 이때부터니까 -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늦겠다며 엄마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는데, 그래도 내가 꼼짝하지 않자 엄마는 내가 덮은 이불을 확 걷어버렸다. 너무나 평화롭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다. 또!

화가 난 엄마는 마구 야단을 쳤고, 어깨였던가 등이었던가…., 아무튼, 내가 몇 대 맞았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이대로 엄마한테 회초리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2층 주인집 할머니에게 가서 소금을 받아올 것인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매가 무서웠던 나는 소금을 받아오는 일이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금을 받아 오겠다고 대답했다.

@시공 주니어 / 이런 책도 있네.. --;;

엄마는 키 대신 주홍색 바가지를 머리에 얹어주고 얼른 다녀오라고 재촉했고, 나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는 채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우느라고 할머니에게도 제대로 못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을 보고 호호 웃으며 얼른 소금을 내주었다. 그리고 내 몸에 뿌리기까지 했다. 그래야 다음에 안 그런다나 뭐라나.

할머니에게는 잘생긴 손자가 하나 있었다. 우식이 오빠라고. 나보다 4~5살 정도 많았는데, 쭉 빠진 다리와 날카로운 눈매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10살 때 기억임.) 어쩌다 등굣길에 오빠를 만나게 되면 같이 가자고 쫄래쫄래 따라가곤 했는데, 그런 내가 부끄러웠는지 따라붙을수록 걸음을 빨리하곤 했었다. 나는 끊임없이 "우식이 오빠! 같이 가!"를 외치며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내디뎠지만, 학교가 가까워질 때면 오빠는 이미 저만큼 멀어져서 150미터쯤 앞서 있었다. 멋진 우식이 오빠가 바로 옆 중학교로 우회하는 뒷모습을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우식이 오빠가 있는 2층에 가서 이불에 오줌쌌다고 소금을 받아 온 것이다. 엄마한테 맞는 게 무서워서 - 진짜 매움 - 소금 받아오기를 택한 것인데,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를 보는 순간 후회했다. 아, 우식이 오빠가 있었지. 제발 날 보지 않기를!

우식이 오빠가 그런 나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재미난 사건이 2층 집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후회된다. 이 한 몸 잠시 회초리로 버티고 말 것을 나는 왜 소금을 받아오겠다고 했는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 엄마는 소금 효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우식이 오빠 효과' 다. 엄마한테 맞기도 싫고, 바가지를 쓰고 우식이 오빠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말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날로 잠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고 싶다. 엄마가 자주 애용했던 기다란 구둣주걱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우식이 오빠! 저랑 나란히 등교 한 번만 해요. 네?


Posted by 슈테른
월경전불쾌장애란. 간단히 말해서 생리 전 또는 기간 중에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일컫는다. 나도 저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보통은 아랫배가 묵직한 게 당기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거나 두통과 피로가 몰려오는 정도다. 더불어 신경이 곤두서고 아무때나 신경질이 나는가하면 의욕이 없고 우울하다. 별것 아닌 일에 기분이 급 하강하기 시작하면 그 날이 오는구나 싶어 손가락을 꼽아보는 건 이미 십 수년동안 이어진 일상 속 습관이 되었다.  

한 달에 한번씩 꼬박 15년 동안 피할 수 없이 당해야 하는 그 기간은 앉아있기 힘들만큼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가 하면 땅 밑에 숨고 싶을 만큼 좌절의 절정에 닿는 등 제각각의 반응따라 제각각 견뎌야만 한다. 어느 날, 화를 참을 수 없어 무턱대고 큰 소리를 내지르자 뒤늦게 민망해졌다. 아무일도 없었던 듯 조용히 덮기엔 좀 일이 컸지 싶길래 순순히 고백했었다. 이렇게. 

 
“있지.. 지난 번처럼 말이야. 내가 혹시 말도 안 되는 거 가지고 싸움을 걸거나 신경질 부리고 또 떼를 쓰거나 하면.. 그냥 대꾸하지 말고 생리중인가보다..해. 그리고 말이야. 아,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어하면서 말이야. 뭐든 다.. 이해해줘.”


그래도 이 정도인 나는 나은 편이다. 월경전불쾌장애가 유독 심한 십년지기 내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생리 때가 되면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다. 꾹 참아보려고 해도 양호실에 내내 누워있다가 결국 조퇴를 할 수 밖에 없을 만큼 내 친구는 한 달에 한번씩 참 많이 아팠다. 그런데 문제는 체육시간이었다. 당시 학생 주임을 맡은 깡패포스의 체육선생은 (깡패포스에 혹시 발끈하실 분들에게, 실제로 저 교사는 주먹으로 배치기 등 이해할 수 없는 체벌로 내 기억 속 깊숙이 깡패로 군림 중이라는 걸 알리고 싶다.) 그 아픔을 이해하거나 포용하지 못했다. 그저 “참어!” “다 하는 거! 너만 그날이야?” “너 더 뛰고 싶어? 열 바퀴 뛰어!” “어디서 꾀병이야!” 식으로 막말을 쏟아냈다. 

극단적인 경우가 떠오르긴 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아픔을 죽었다 깨도 모른다. 당연하지, 남잔데. 최근 친구는 병원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다행스러운 얘기와 게보린이나 펜잘 등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다는 황당한 얘기를 동시에 들었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생리통이 준다는 속설도 있지만 ‘생리통 때문에 애 낳았어.’ 라는 얘기는 아직 듣지 못했기에 그저 한 달에 한번은 '나 죽었소' 하고 일주일을 견디는 수 밖에는 방도가 없다.

최근에 월경전불쾌장애에 '먹는 피임약'이 적절한 효과가 있다는 애기를 들었다. 한국에서도 곧 출시될 예정인 ‘야즈’는 먹는 피임약으로는 최초로 월경전불쾌장애 치료제로 승인 받았다고. 미국, 유럽, 호주, 태국 등에서 이미 판매 중이고 피임 및 여드름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생리 중에 배가 아프고 허리가 쑤시고 신경질이 난다고 해서 무조건 피임약을 먹자는 얘긴 아니다. 이 정도는 식습관이나 운동 등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선에서 치료의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다만 일부 여성들 중에 일상생활이 헝크러질만큼 과도한 불쾌감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그냥 당하지 말고 한번쯤 고려해 보자는 거다.

앗.. 그런데 머릿속을 스친 한 사람 B군. 고개 돌릴 때마다 울상인 그는 말끝마다 사사껀껀 목에 핏대 세운다. 종종 그런 그에게 “ 너 생리하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B군..'야즈'를 추천하고 싶네. --;; "


Posted by 애플's
<위기의 주부들> 의 가르시아가 넓은 정원이 한 눈에 보이는 아담한 욕조에 몸을 담근다. 나른하게 몸이 풀리자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이 닿는 작은 서랍을 열고 알약 하나를 입 속에 넣는다. TV를 보던 나는 흐름 상 그게 피임약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왠지 목욕과 피임약이라는 '낯섦' 에 시선이 멈췄다.


고백하면, 피임약을 매일 한 알씩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게 된 나는 올해로 서른이다. 피임약의 존재는 알았으되 잠자리 다음 날 딱 한번만 약을 구해다 복용하면 되는(응급 피임약) 줄 알았다. 그 약이란 게 산부인과 처방전 없이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으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런 무지함으로 위험천만한 임신과 피임의 경계 길을 십 년 넘게 걸어온 셈이다. 나름의 방법은 있었다.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염두해두고 그 날짜를 잘 표시해 뒀다. 어쩌다 빨간 색칠이 입혀진 날 느닷없는 뜨거움과 마주칠 때면 곤란했지만 상황마다 적절하게 대처해 문제를 잠잠케 했다. 콘돔 역시 유용했지만 그건 이상하리만큼 남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가 원하면' 내지는 '그가 갖고 있다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매일 꼬박 한 알의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원치 않는 임신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스스로 지키는 서양 여성을 보고있자니 동시대를 사는 내가 새삼 나약하게 느껴진다. 단 한번뿐인 인생, 즐거움을 쫓는 노련하고 능동적인 항해사가 되고싶은데 피임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일만 급급하게 해대는 갑판원 같아서 말이다.  

런던에서 머물던 스무살 무렵 온갖 펍Pub 의 여자 화장실마다 콘돔 판매기가 놓여진 걸 보았다. 아니 콘돔과 콘돔 판매기를 동시에 처음 보았다. 당시엔 부끄러워 발음만으로 얼굴이 벌개졌던 ‘콘돔’을 또래의 친구들은 뽑기처럼 뽑아내 핸드백 속에 넣고 당당하게 남친을 만나러 가는구나, 역시 런더너 Londoner 들은 완전 쿨!하구나 싶어 한껏 상기됐던 기억. 그 후로 10년의 세월동안 나는 단 한 차례도 스스로 그것을 준비한 적이 없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구석구석 존재하는 문화적 차이가 한 몫 했을거다.) 이런 나인데 가르시아가 보여준 '먹는 피임약'은 더욱 아득하게 멀다. 피임 성공률 99% 와 각종 암 발생율 감소 그리고 여드름과 다이어트에까지 미치는 놀라운 부가적인 해택이 확실하데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이건 '약'보다는 '자연 치유'의 기다림을 선호했던 우리내 문화 속에서 자란 탓일 지 모른다. 한 달의 27일 동안 연속으로 한 개 얄약을 집어 삼킨다는 건.. 그래서 내게 아직은 어려운 일이다. 아쉬운대로 지갑 속 달력과 색연필이라도 챙겨 넣고 다녀야겠다.


Posted by 애플's

나이 서른이 넘으니 서울이 부쩍 좁게 느껴진다. 서울 하늘 아래 지난 인연과 마주치지 않는 길이 없으니...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마냥 걷다보면 추억을 또 마주치는' 좁고 좁은 서울의 거리.


강남역을 걷고 있자니 문 닫힌 빌딩 옆에서 남몰래 나눈 키스가 생각나고, 종로를 걷고 있자니 그와 함께 마신 막걸리 맛이 입안을 맴맴돈다. 대학로에는 내가 졸졸 쫓아다니던 빨간 모자 오빠의 뒷모습이 보이고, 홍대앞 삼거리에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던 그 남자가 아직도 그자리에 서 있다. 광화문 사거리에 남아 있는 선배의 향기를 맡으며 걷고 있노라니 청계천 바위에 앉아 있는 남자 세 명이 우르르 떠오른다. 어이쿠! 너를 만나도 그가 생각나고, 그를 만나도 너를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참 좁은 서울.

그 남자들도 그곳을 지나치며 나와의 추억을 마주치며 살고 있을까?

 

Posted by 슈테른

몰래 훔쳐 읽은 그들의 사랑얘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신과 나는 무릎이 닮아 있었습니다' 였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엉성한 젓가락질이었다. 나는 밥을 먹다 자주 반찬을 놓쳤고 그래도 나보다 나은 그가 삐뚜름한 젓가락질로 반찬을 집어 밥 그릇 안으로 밀어 넣어 주곤 했다. 아, 종종 얼굴이 닮았다는 얘기와 남매냐는 질문을 듣기도 했었지..

 

 

나와 닮은 그가 참 많이 좋았던 거 같다. 너무 좋았기 때문에 끝없이 궁금했었던 것도 같다. 아침엔 잘 일어났는지 출근 길이 힘들진 않았는지 저녁 약속 장소는 어딘지 내가 보고 싶지는 않은지.. 이런 내 사랑엔 여백이 없었다. 꽉 차고도 넘쳤고 작은 틈 하나도 용납 못해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아도 그것이 바로 뜨거운 사랑, 바로 그거라고 믿었다.

 

이런 내게 오늘 만난 누군가 얘기한다 .. ‘사랑은 일생을 다해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 여백’이라고. 머리가 띵하다. 여백을 닮은 사랑이라니… .

 

 

PS. 김경주 <패스포트>를 읽다가..

너를 알고 싶어..

계속 찾겠어..

Posted by 슈테른

황군이 떠오른다. 찬 바람을 맞으며 가로등불 아래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던 황군. 인생의 8할이 슬픈 사랑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지만 얼마되지 않는 2할의 낭만적인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이 깊은 시각. 문득 나를 잠못이루게하는 황군. 잘 지내고 있니?

 

 

*

 

황군과는 그렇게 친하지도 친하지 않지도 않은 그저그런 사이였다. 같은 동아리 친구이기는 했으나, 변변하게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한 미적지근한 친구였다.

 

딱 한 번, 황군과 뮤지컬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러 간적은 있었다. 이미 고등학교때 본 뮤지컬이었지만, 황군의 공연 관람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 건, 꽤 괜찮게 보았던 공연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단 둘이 보러 간다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기에 흔쾌히 황군의 제안에 동의를 표했다.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학교에서 나와 귀가하던 중, 우연히 좌석버스에서 황군 옆자리에 앉게 된 나는 황군의 뮤지컬 관람 제안에, 좋다고 환호하며 앞,뒤,옆으로 앉아 있는 모든 동아리 사람들에게 다같이 보자고 떠들어댔다. 니들끼리 봐라, 나는 별로 관심 없다며 사양하는 선배들은 이미 황군이 나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들었다. 나같은 눈치쟁이가 몰랐다면 믿겠냐마는 나는 하늘에 맹새코 황군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공연을 관람한 이후에도 황군은 나에게 별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쯤 겨울방학이 막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는 외출을 했다. 집에 있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듯, 지겨운 고등학교 생활에 분풀이 하듯 계속되는 외출. 눈만 뜨면 집을 나섰고, 달이 뜨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귀가하는게 내 일상이었다.

 

어느날, 12시 좀 넘어 집에 왔을까. 주무시는 부모님이 깰까 조심스레 욕실과 내 방을 오가며 잠잘 준비를 했다. 집안의 고요함을 유지한 채 나는 스르륵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이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받은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황군이었다. 우리집 근처에 왔다가 잠깐 보고 갈까 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직 귀가를 안한 것 같은데, 올때까지 기다릴테니 들어가기 전에 자기를 보고 가라는 내용이었다. 난 이미 집에 들어왔구먼 어디서 기다렸다는거야? 

 

그 날은 정말 추웠다. 시간이 좀 지난 메세지이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베란다 창밖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저 멀리 사람이 있는듯도 하고 없는 듯도 했다. 걱정하며 잠드느니 그래도 잠깐 나가서 확인이라도 하고 오는게 낫겠다 싶어 잠옷 위에 커다란 코트를 입고 흐트러진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짙어지는 추위에 오들오들 온몸이 절로 떨렸다.

 

아파트 단지 모퉁이 가로등 아래 황군이 서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두 갈래의 길 사이에서 황군과 내가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지하철은 다니냐며, 버스는 있냐며 걱정하는 내게, 황군은 몸 뒤로 숨겨둔 꽃다발을 불쑥 내밀었다. '나 너 좋아해'

 

이보다 명쾌한 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왜 너의 집앞에 와 있는지, 이 추위에 몇시간을 왜 기다렸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도 거의 없었다. 니가 좋다는 한 마디가 황군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였다.

 

황군은 캐나다 이민을 앞두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모두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가기 위한 준비하고 있었으며, 출국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학도 아닌 이민. 가깝지도 않은 바다 건너 저 멀리 캐나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대도 그가 고백을 해 온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대화가 오갔고, 잠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황군은 나에게 편지 한 통을 건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이불을 덮고 엎드려 황군의 편지를 읽었다.

 

가족들이 이민을 결정했을 때, 나는 죽어도 갈 수 없다며 떼를 쓰고 한국에서 혼자 남아 살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친해지면, 나중에서야 마음을 얘기하려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른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황군. 너는 나의 첫사랑이라며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 녀석의 마음이 짠하게 전해져왔다.

 

 

수줍으면서도 당당한 고백을 남긴 황군은, 그 해 겨울이 끝나기 전 캐나다로 떠났고, 그 작은 고백은 나의 역사 속에 묻혀져갔다.

 

 

*

 

나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 연애를 하고, 이별 하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황군 역시 그렇게 살고 있겠지? 한 번도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 적 없지만, 그의 고백만큼은 그립다.

 

상대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이리저리 재고, 눈치를 보다가 아닌 것 같으면 말고 느낌이 온다 싶으면 연애가 시작되는 사랑에 묻혀 지내는 중에 문득문득, 황군의 명확하기 이를데 없는 고백이 살아 돌아오는 시대를 기다린다. 아니, 그 시대는 계속되고 있지만 내 나이가 고백을 잃어버린 듯하다.

 

Posted by 슈테른

"얘들아, 대학에 가면 니들 뒤로 남자가 줄을 서거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렴."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지 않거나, 일단 의심부터 하곤 했던 내가 선생님의 저 문장 하나만큼은 철썩같이 믿었다.

 

나는 초,중,고를 모두 '남녀공학'에 다닌'행운아'이면서, 동시에 그 비일비재한 연애사건 중 어느 하나의 주인공도 되어보지 못한 '불운아'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나의 뻗친 단발머리와 위아랫니에 나란히 사이좋게 깔려 있던 치아 교정기. 이리보고 저리봐도 볼 품 없었던 내가 저슬픈 운명의 길을 걸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성인이 되서 머리를 마음껏 기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스무살이 되기 전에 교정기도 모두 철수시킬 예정이었기에, 나 역시 예뻐질 것이고, 선생님 말씀대로 내 뒤에도 남자들이 줄을 설 날이 오리라 '굳게' 믿었다.

 

줄을 서시오!!!

 

대학에 가보니 사람들이 정말 여기저기 줄을 섰다. 여자 신입생을 보는 선배들의 눈은 누구보다 초롱초롱하게 빛났고, 이에 질세라 남자 동기 녀석들도 여기저기 줄을 섰다. 그러나, 신기하고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던 것도 잠시. 내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라. 아무도..... 그 줄!! 내가 섰다. 요즘 말마따나, 이게 뭥미.

 

유난히 인기가 많았던 K선배 뒤에 줄을 서서, 예쁜 친구에게 밀리고 잘난 친구에게 밀리며 눈물과 아픔으로 점철된 시절을 보냈다. 핑크빛으로 물들 줄 알았던 내 스무살의 사랑이 그후로로 오랫동안 참 많이 아팠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아니, 내가 누굴 탓하겠는가. 다른거 다 믿어도 믿지 않아야 할 단 한 문장을 믿어버린 내가 바보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열심히 줄을 섰다. 그 줄이... 참~~~ 안줄더라..

 

 

Posted by 슈테른

다시 꺼내 쳐다보기조차 힘들었던 레이첼야마카타 Rachael Yamagata 를 무덤덤히 듣고 있다.

그럴 때도 됐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까.

Fleur, Henri Matisse

 

늘 같이 있는 거.

할 얘기가 넘쳐서 시도 때도 없이 수다떠는 거.

계속 보고 싶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한 거.

같이 웃고 같이 먹고 같이 자는 거.

묻으면 닦아주고 털어주고 힘들어하면 만져주고 쓰다듬는 거.

얘기하다 잠들고 얘기하다 아침 맞는 거. 그래도 하나도 안피곤하고 안아까운거.

바라보다 발을 삐끗하고 넘어질뻔하니까 낄낄거리는 거.

죽이고 싶을 만큼 질투가 나는 거.

가끔은 정말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의심하는 거. 대답 듣고 안심하는 거.

다툰 날은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히는거.

무작정 집 앞에 찾아가 스무 시간씩 기다리고서라도 얼굴 마주 하는 거.

그럼 말없이 그냥 꼭 안아주는 거.

안 미안해도 미안하다 먼저 말하는 거.

심통내면 간질여 웃게 만들어 주는 거.

예쁘다 멋지다 최고다 아낌없이 뱉는 거.

머리에 리본 달고 깜짝 선물쑈 하는 거. 유치하다고 면박 주면 삐치는 거.

삐치면 토닥토닥 엉덩이 만져주는 거.

...

 

맨날맨날 이러는 거...

 

 

.......

 

이런 거.. 하자고 하면 피곤해 도망갈 거지?

도망가면..쫓아갈거같아. 나 아마..그럴거같아...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