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gin, Gustav Klimt
배가 아파...왜 이렇게 아프지... 똥배는 아닌데...
아파...아파.
육고를 건너고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모호한 위험스런 길을 지나와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그대로 뻗어 누웠다. 배를 꾹꾹 눌러도 보고 뒹굴어도 봤지만 계속계속 아팠다. 이상해..이상해...
묵직한 통증이었다. 그간엔 느껴보지 못한 배탈 이었다. 허리도 뻐근한 거 같았고 기분도 나빴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려면 밤 9시는 넘어야 했다. 아무 방법 없이 이 생경한 아픔을 스스로 견뎌야만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잠깐 고개를 돌렸던가. 언뜻, 벗어 놓은 청바지에 비친 붉은 자국이 보였다.
어! 이건 뭐지? 뭐가 여기 묻었지? 뭘 잘못 깔고 앉았나?
그 날을 더듬어 보면 난 참 더디게도 그것이 월경의 시작임을 눈치 챘다. 그도 그럴 것이 월경이 이맘때쯤 올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학교에서 알려주는 성교육 수업 시간이 있었지만 열심히 듣지 않았고, 그러기엔 내용이 지나치게 고리타분했었다.
어쨌든, 놀란 마음 가라앉힐 새도 없이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젊고 건장한 점원오빠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그 젊은 오빠를 보자 도무지 생리대를 가지고 계산대에 올려놓을 자신이 없었다.
나도 여자라고. 이건 여자에게 필수 용품이라고.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아, 안 돼. 난 너무 어리잖아. 아, 저 오빠보기 너무 창피해!!
두 심정이 마구 교차됐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생리대를 집었다. 쭈뼛쭈뼛 계산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계산을 마쳤다.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점원오빠의 행동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설마, 저 오빠... 부끄러워하는 날 배려한 걸까. 반신반의하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곤.. 그것을 속옷 위에 깔고 비밀스러운 밤을 맞고 조용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두 번째 그 다음... 그 후로도 여러 번 생리가 진행될 동안 난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생리대도 봉지에 싸서 집 밖에다 버렸다. 그런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생리’하는 것 자체가 시종일관 부끄러웠고 또 어쩌면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굳이 유난을 떨 필요가 있을까 라고 어린 나 혼자서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 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번 붉은 출혈을 본다. 첫날과 같이 요통을 동반한 이상한 배 아픔을 겪는다. 가끔은 화가 솟구칠 만큼 신경이 날카로워 지기도 하고 어쩔 땐 참 미안한 마음으로 1년에 두 세번 정도만 생리를 하는 생리 불순인 친구를 부러워도 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한 번쯤은 안하고 건너뛰고 싶다가도 그저 일상의 하루쯤으로 별일 아는 듯 받아들이면서.
생리 주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Gustav Klimt
최근, 피임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바로 생리 주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지금 미국에서는 세 달에 한번만 생리를 할 수 있도록 짜인 피임약 세트가 한창 유행이다.
이미 피임약 복용 인구가 50%를 넘긴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이 두 쪽 나도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그 날을 (물론 나의 자궁이 건강하다는 몸의 반응이긴 하지만) 건강상 아무 문제없이 건너 뛸 수 있다는 건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피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리 주기를 결정해 두 달에 한번 혹은 세 달에 한번만 생리를 선택해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그 길을 걸어가 보고 싶다.
지난 9월 이후 쭉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지금 계획은 휴약기를 두지 않고 (내가 복용 중인 ‘야즈’의 방식이라면 약 복용 25일 이후부터 나흘간의 위약 4알을 먹지 않고) 10월까지 쭉 피임약을 복용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내 생에 첫 생리 없는 가을을, 10월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의학상 피임약을 복용함으로써 2, 3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 까지도 생리를 하지 않아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한다. 걱정 없이 도전해 볼만 하다는 뜻이다.
이제껏 생리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몸의 신호였다. 그렇다면 몸의 신호에 오롯이 의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리 주기를 스스로 정하고 생리와 피임의 능동적인 방식을 선택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용기를 내야 하는 첫 도전임은 확실하지만, 지금의 나의 선택과 도전 덕분에 내 몸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주체적 여성으로써 내 몸과 한껏 가까워진 기분도 든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꼼짝없이 당해야 했던 생리주기로부터의 탈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카운트 다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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