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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 중학교 일기장에도 써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무살이 넘으면 찾을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은 지금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이건 사실 너무 당연 한 일. 사랑이라는 것이 본래 답이 없이니까. 사랑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일 거다.
 
인류는 '사랑'이라는 그것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리고 정의 내린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또 누군가는 소설로, 영화로 그리고, 그림으로. 실체를 알 수 없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사랑이 주는 설렘'을 쫒아 오늘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린비 출판사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천번쯤 고개를 끄덕이며 읽은 책.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대상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과 더 젋게는 이 세계와의 공존을 기획하는 일이다. 이 공존에서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자신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삶의 창조,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영역이다.

"언제나 그 스스로가 농사 짓는 농부가 되라, 이 존재세계의 인(因)이 되어라. 주인이 되라." 우리 모두가 인(因)이 될 때, 이 인과 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걸 인연(因緣)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은 인연, 이거는 인연이 성숙되지 않았거나 인연이 넘었다, 인연이 끝났다 그럽니다. 그래서 인연이 성숙되지 않은 중생은 부처도 구제하지 못한다 그러죠. 사무치게 한 번 생각해 몹시다. 연(緣)이 되지 말고, 인(因)이되라는 소리. 이게 바로 '닦는다'는 개념입니다. (농담, '삶과 수행')

고로,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혼자 갈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무치게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니.

- 고미숙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내가 과연 사랑을 하고 싶은건가, 라는 의문이 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 같다. 설렘 이상의 감정이 점철된 관계, 하나이자 둘 일 수 있고 둘이자 하나일 수 있는, 함께 하지만 가장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나의 지지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판적일 수 있는 관계. 나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이 하고 싶은거고, 아니라면 사랑이 아닌 그 무엇(대체어가 필요한?)이겠지.

어쨌든 이런 생각 가지고는 연애 못한다는 거.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런 사랑도 있을 수 있겠지 싶어 기다려본다. 넌 어딨니?


Posted by 슈테른

정말 딱 한 번의 키스만 한다면 더 이상 아쉽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살면서 몇 번은 마주친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이 자리가 아니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그럴 땐 정말 대놓고 묻고 싶다. Shall we kiss?

키스가 사랑하는 연인들만의 전유물도 아니거니와, 키스로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할, 혹은 하지 말아야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까짓거 그냥 눈 딱 감고 입을 맞추는거다. 왜?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오늘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가벼운 키스쯤 무엇이 두렵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제 그렇게 해 본 적은  없다. 언젠가 어디선가 이런 순간이 또 온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고 두 주먹 불끈쥐며 영화같은 그 순간을 상상해볼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 프랑스 영화 '쉘위키스'를 보며 깜짝 놀랐다. 키스는  해보기 전에는 '가벼운지 무거운지 알 수 없다'는 영화 속 대사.  머리로 알고 몸으로 아는 그것을 내가 깜빡 잊고 살고 있었다. Shall we kiss? 라는 이 질문이 얼마나 위험한 질문인지,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키스가 가져올 엄청난 파장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사실은 지루한 삶의 큰 사고 하나쯤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Shall we kiss? 그 위험한 질문. 아무한테나 하지 말아야지. : )




 

Posted by 슈테른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그냥 걸레로 닦아 버리고 앞으로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기억이 없을 수는 없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게까지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 이성에 눈뜨기 -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이 이때부터니까 -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침 학교에 늦겠다며 엄마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는데, 그래도 내가 꼼짝하지 않자 엄마는 내가 덮은 이불을 확 걷어버렸다. 너무나 평화롭게 잠을 청하고 있는데, 엄마가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다. 또!

화가 난 엄마는 마구 야단을 쳤고, 어깨였던가 등이었던가…., 아무튼, 내가 몇 대 맞았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이대로 엄마한테 회초리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2층 주인집 할머니에게 가서 소금을 받아올 것인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매가 무서웠던 나는 소금을 받아오는 일이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금을 받아 오겠다고 대답했다.

@시공 주니어 / 이런 책도 있네.. --;;

엄마는 키 대신 주홍색 바가지를 머리에 얹어주고 얼른 다녀오라고 재촉했고, 나는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는 채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우느라고 할머니에게도 제대로 못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을 보고 호호 웃으며 얼른 소금을 내주었다. 그리고 내 몸에 뿌리기까지 했다. 그래야 다음에 안 그런다나 뭐라나.

할머니에게는 잘생긴 손자가 하나 있었다. 우식이 오빠라고. 나보다 4~5살 정도 많았는데, 쭉 빠진 다리와 날카로운 눈매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10살 때 기억임.) 어쩌다 등굣길에 오빠를 만나게 되면 같이 가자고 쫄래쫄래 따라가곤 했는데, 그런 내가 부끄러웠는지 따라붙을수록 걸음을 빨리하곤 했었다. 나는 끊임없이 "우식이 오빠! 같이 가!"를 외치며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내디뎠지만, 학교가 가까워질 때면 오빠는 이미 저만큼 멀어져서 150미터쯤 앞서 있었다. 멋진 우식이 오빠가 바로 옆 중학교로 우회하는 뒷모습을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우식이 오빠가 있는 2층에 가서 이불에 오줌쌌다고 소금을 받아 온 것이다. 엄마한테 맞는 게 무서워서 - 진짜 매움 - 소금 받아오기를 택한 것인데,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를 보는 순간 후회했다. 아, 우식이 오빠가 있었지. 제발 날 보지 않기를!

우식이 오빠가 그런 나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재미난 사건이 2층 집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후회된다. 이 한 몸 잠시 회초리로 버티고 말 것을 나는 왜 소금을 받아오겠다고 했는지…….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 엄마는 소금 효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우식이 오빠 효과' 다. 엄마한테 맞기도 싫고, 바가지를 쓰고 우식이 오빠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말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날로 잠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고 싶다. 엄마가 자주 애용했던 기다란 구둣주걱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우식이 오빠! 저랑 나란히 등교 한 번만 해요. 네?


Posted by 슈테른

나이 서른이 넘으니 서울이 부쩍 좁게 느껴진다. 서울 하늘 아래 지난 인연과 마주치지 않는 길이 없으니...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마냥 걷다보면 추억을 또 마주치는' 좁고 좁은 서울의 거리.


강남역을 걷고 있자니 문 닫힌 빌딩 옆에서 남몰래 나눈 키스가 생각나고, 종로를 걷고 있자니 그와 함께 마신 막걸리 맛이 입안을 맴맴돈다. 대학로에는 내가 졸졸 쫓아다니던 빨간 모자 오빠의 뒷모습이 보이고, 홍대앞 삼거리에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던 그 남자가 아직도 그자리에 서 있다. 광화문 사거리에 남아 있는 선배의 향기를 맡으며 걷고 있노라니 청계천 바위에 앉아 있는 남자 세 명이 우르르 떠오른다. 어이쿠! 너를 만나도 그가 생각나고, 그를 만나도 너를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참 좁은 서울.

그 남자들도 그곳을 지나치며 나와의 추억을 마주치며 살고 있을까?

 

Posted by 슈테른

황군이 떠오른다. 찬 바람을 맞으며 가로등불 아래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던 황군. 인생의 8할이 슬픈 사랑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지만 얼마되지 않는 2할의 낭만적인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이 깊은 시각. 문득 나를 잠못이루게하는 황군. 잘 지내고 있니?

 

 

*

 

황군과는 그렇게 친하지도 친하지 않지도 않은 그저그런 사이였다. 같은 동아리 친구이기는 했으나, 변변하게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한 미적지근한 친구였다.

 

딱 한 번, 황군과 뮤지컬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러 간적은 있었다. 이미 고등학교때 본 뮤지컬이었지만, 황군의 공연 관람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 건, 꽤 괜찮게 보았던 공연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단 둘이 보러 간다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기에 흔쾌히 황군의 제안에 동의를 표했다.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학교에서 나와 귀가하던 중, 우연히 좌석버스에서 황군 옆자리에 앉게 된 나는 황군의 뮤지컬 관람 제안에, 좋다고 환호하며 앞,뒤,옆으로 앉아 있는 모든 동아리 사람들에게 다같이 보자고 떠들어댔다. 니들끼리 봐라, 나는 별로 관심 없다며 사양하는 선배들은 이미 황군이 나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들었다. 나같은 눈치쟁이가 몰랐다면 믿겠냐마는 나는 하늘에 맹새코 황군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공연을 관람한 이후에도 황군은 나에게 별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쯤 겨울방학이 막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는 외출을 했다. 집에 있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듯, 지겨운 고등학교 생활에 분풀이 하듯 계속되는 외출. 눈만 뜨면 집을 나섰고, 달이 뜨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귀가하는게 내 일상이었다.

 

어느날, 12시 좀 넘어 집에 왔을까. 주무시는 부모님이 깰까 조심스레 욕실과 내 방을 오가며 잠잘 준비를 했다. 집안의 고요함을 유지한 채 나는 스르륵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이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받은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황군이었다. 우리집 근처에 왔다가 잠깐 보고 갈까 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직 귀가를 안한 것 같은데, 올때까지 기다릴테니 들어가기 전에 자기를 보고 가라는 내용이었다. 난 이미 집에 들어왔구먼 어디서 기다렸다는거야? 

 

그 날은 정말 추웠다. 시간이 좀 지난 메세지이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베란다 창밖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저 멀리 사람이 있는듯도 하고 없는 듯도 했다. 걱정하며 잠드느니 그래도 잠깐 나가서 확인이라도 하고 오는게 낫겠다 싶어 잠옷 위에 커다란 코트를 입고 흐트러진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짙어지는 추위에 오들오들 온몸이 절로 떨렸다.

 

아파트 단지 모퉁이 가로등 아래 황군이 서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두 갈래의 길 사이에서 황군과 내가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지하철은 다니냐며, 버스는 있냐며 걱정하는 내게, 황군은 몸 뒤로 숨겨둔 꽃다발을 불쑥 내밀었다. '나 너 좋아해'

 

이보다 명쾌한 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왜 너의 집앞에 와 있는지, 이 추위에 몇시간을 왜 기다렸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도 거의 없었다. 니가 좋다는 한 마디가 황군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였다.

 

황군은 캐나다 이민을 앞두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모두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가기 위한 준비하고 있었으며, 출국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학도 아닌 이민. 가깝지도 않은 바다 건너 저 멀리 캐나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대도 그가 고백을 해 온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대화가 오갔고, 잠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황군은 나에게 편지 한 통을 건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이불을 덮고 엎드려 황군의 편지를 읽었다.

 

가족들이 이민을 결정했을 때, 나는 죽어도 갈 수 없다며 떼를 쓰고 한국에서 혼자 남아 살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친해지면, 나중에서야 마음을 얘기하려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른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황군. 너는 나의 첫사랑이라며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 녀석의 마음이 짠하게 전해져왔다.

 

 

수줍으면서도 당당한 고백을 남긴 황군은, 그 해 겨울이 끝나기 전 캐나다로 떠났고, 그 작은 고백은 나의 역사 속에 묻혀져갔다.

 

 

*

 

나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 연애를 하고, 이별 하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황군 역시 그렇게 살고 있겠지? 한 번도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 적 없지만, 그의 고백만큼은 그립다.

 

상대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이리저리 재고, 눈치를 보다가 아닌 것 같으면 말고 느낌이 온다 싶으면 연애가 시작되는 사랑에 묻혀 지내는 중에 문득문득, 황군의 명확하기 이를데 없는 고백이 살아 돌아오는 시대를 기다린다. 아니, 그 시대는 계속되고 있지만 내 나이가 고백을 잃어버린 듯하다.

 

Posted by 슈테른

"얘들아, 대학에 가면 니들 뒤로 남자가 줄을 서거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렴."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지 않거나, 일단 의심부터 하곤 했던 내가 선생님의 저 문장 하나만큼은 철썩같이 믿었다.

 

나는 초,중,고를 모두 '남녀공학'에 다닌'행운아'이면서, 동시에 그 비일비재한 연애사건 중 어느 하나의 주인공도 되어보지 못한 '불운아'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나의 뻗친 단발머리와 위아랫니에 나란히 사이좋게 깔려 있던 치아 교정기. 이리보고 저리봐도 볼 품 없었던 내가 저슬픈 운명의 길을 걸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성인이 되서 머리를 마음껏 기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스무살이 되기 전에 교정기도 모두 철수시킬 예정이었기에, 나 역시 예뻐질 것이고, 선생님 말씀대로 내 뒤에도 남자들이 줄을 설 날이 오리라 '굳게' 믿었다.

 

줄을 서시오!!!

 

대학에 가보니 사람들이 정말 여기저기 줄을 섰다. 여자 신입생을 보는 선배들의 눈은 누구보다 초롱초롱하게 빛났고, 이에 질세라 남자 동기 녀석들도 여기저기 줄을 섰다. 그러나, 신기하고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던 것도 잠시. 내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라. 아무도..... 그 줄!! 내가 섰다. 요즘 말마따나, 이게 뭥미.

 

유난히 인기가 많았던 K선배 뒤에 줄을 서서, 예쁜 친구에게 밀리고 잘난 친구에게 밀리며 눈물과 아픔으로 점철된 시절을 보냈다. 핑크빛으로 물들 줄 알았던 내 스무살의 사랑이 그후로로 오랫동안 참 많이 아팠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아니, 내가 누굴 탓하겠는가. 다른거 다 믿어도 믿지 않아야 할 단 한 문장을 믿어버린 내가 바보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열심히 줄을 섰다. 그 줄이... 참~~~ 안줄더라..

 

 

Posted by 슈테른

영화 <Before Sunrise>와 <Before Sunset>에는 놓쳐도 그만인 장면이 없다. 두 남녀의 수다와 몸짓, 눈빛, 그들 뒤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주변 그림. 한 백번쯤 보면 아주 작은 것까지 다 내 마음 안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 중에서도 나는 <Before Sunrise>의 첫 장면과 <Before Sunset>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사랑하는데, 특히 두 사람이 처음 만나 기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첫 장면은 (나의 영원한 로망이 담긴) 최고의 장면이다. 첫만남의 짜릿함, 설렘, 긴장감. 아.. 생각만해도 떨린다.

 

영화 <비포선라이즈>, 기차에서의 첫 식사!

 

그런데, 왜!!!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로맨스는 영화 속에 있거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냔 말이다. 홀로 떠난 나의 여행에서 함께 돌아오는 것은, 외로워보이는 셀카뿐이다. 젠장!

 

민박집 내 방에서..너무 심심한 나머지.. 이거 셀카다. ㅋㅋ

 

추웠다. 계절탓은 아니었던듯. 흑흑.

 

정말 즐거웠다구!

 

셀카 포즈는 거기서 거기다. 표정으로 변화를 주는 수 밖에! 여기는 지리산! 야호~

 

그래, 여행에는 '로맨스' 말고도 여러가지가 요소가 있는 법! 비록 로맨스가 빠져있으나 즐거웠던 나만의 여행이었으니 많이 아쉬울 것은 없는 여행이었다, 라고 위로해본다.

 

영화는 현실이고, 현실은 곧 영화이니 나에게도 언젠가, 여행의 로맨스 하나쯤 생기지 않을까. 그게 꼭 뭐 '새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 현재 연애중. 정치적 발언맞음.ㅎ)

 

 

 

Posted by 슈테른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저를 만지고, 침을 넘기기도 힘들정도로 경직된 목 뒤로 음식을 넘겨야 한다. 또한, 행여 밥풀이 입 언저리에 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냅킨으로 입가를 매만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애 초반 식사는 이래서 '조금' 힘들다.


*


사랑을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찰나의 연인 앞에 시골 인심이 가득 놓였다. 그릇에 차고 넘치는 밥을 보며  두 사람은 멋적은 웃음을 교환한다.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없는 밥을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싸이더스 /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나는 연애를 할 때면, 늘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상대를 만나기 전부터 긴장감과 설렘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쉴 새 없이 뛰는 탓일까. 무언지 모를 묘한 공기로 꽉 들어찬 가슴 아래 공간으로 또 다른 포만감을 안겨주는 것은 과식이나 다름없다


*


그 놈의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하지!' 되겠다. 사랑은, 끊임없이 밥을 짓는 신비로운 마법의 전기밥솥이다. 우후훗.


 

Posted by 슈테른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칼릴 지브란 -



머리부터 발끝까지 함께하되,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지는 않는 것. '나'와 '너'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아니 '하고 싶은' 사랑이다. 그 때문에, 나와 사랑을 하던 어떤 이는 너무 자유롭다 못해 마음까지 자유로워져 버렸고, 또 어떤이는 늘 나를 불안해했다.


저마다 생각하고 바라는 사랑이 달라,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하면서도 그렇게 애태우고 다투나보다.


사랑을 하기 전에는 마음을 얻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려야하고, 연인이 되어서도 애태워야 하고, 못견디겠다 싶어 헤어진 이후에도 상처를 남기는, 그 놈의 사랑.


뭐 좋은게 있다고..., 나는 오늘도 사랑을 찾는다. 그 누군가는 나와 함께 거리를 두고 서 있을 수 있는 '기둥'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Posted by 슈테른

"우리, 그냥 예전처럼 편한 친구로 돌아가자."
"…………그래."


왜 우리가 그냥 친구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천 개쯤 대답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말없이 절반의 눈물은 흘리고, 절반의 눈물은 삼키며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셨다.


술집을 나서는데 내가 삼킨 절반의 눈물이 하늘에서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비겁하게 비를 피하며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비에 젖은 뒷모습을 보이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끝까지 덤덤해 보이고 싶었던 나의 알량한자존심. 우리는 그렇게 걸었고, 그렇게 싱겁게 헤어졌다.


영화 <행복> / 이별 뒤.. 숨이 차면 죽을 수도 있는 그녀는..차라리 죽겠다며 뛰고 또 뛴다.


집으로 오는 내내 펑펑 울었다. 가슴을 꼭 움켜쥐었다. 내 생에 가장 긴 고통의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 한 켠에 앉아 계속해서 울었다. 그렇게 울고, 또 울다가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와서 눈을 떴고, 밥을 챙겨 먹었다. 사랑은 그렇게, 하룻밤 꿈같이 지나가 버렸다.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평일 아침. 관객이 거의 없는 넓은 영화관. 작은 의자 위에 무거운 몸을 웅크린 채, 스크린을 보며 다시 한 번, 하염없이 울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며, 나는 뼛속까지 아픈 고통을 참아냈다.

영화가 끝났다. 봄날이 갔다. 나의 사랑도 지나갔다. 극장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봄은 또 올 것이라고, 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내라고 다독여줬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봄은 꼭 온다. 그래서 모두가, 죽을 것만 같은 이별을 겪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 죽을 것 같은 이별 뒤.. 한참을 지나.. 그는 웃었다.


 

2002년 어느 날의 기억.
봄은..., 정말로 또 왔다.....

 
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