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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대학에 가면 니들 뒤로 남자가 줄을 서거든!?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렴."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지 않거나, 일단 의심부터 하곤 했던 내가 선생님의 저 문장 하나만큼은 철썩같이 믿었다.

 

나는 초,중,고를 모두 '남녀공학'에 다닌'행운아'이면서, 동시에 그 비일비재한 연애사건 중 어느 하나의 주인공도 되어보지 못한 '불운아'이기도 했다. 어떻게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나의 뻗친 단발머리와 위아랫니에 나란히 사이좋게 깔려 있던 치아 교정기. 이리보고 저리봐도 볼 품 없었던 내가 저슬픈 운명의 길을 걸었던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도 성인이 되서 머리를 마음껏 기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스무살이 되기 전에 교정기도 모두 철수시킬 예정이었기에, 나 역시 예뻐질 것이고, 선생님 말씀대로 내 뒤에도 남자들이 줄을 설 날이 오리라 '굳게' 믿었다.

 

줄을 서시오!!!

 

대학에 가보니 사람들이 정말 여기저기 줄을 섰다. 여자 신입생을 보는 선배들의 눈은 누구보다 초롱초롱하게 빛났고, 이에 질세라 남자 동기 녀석들도 여기저기 줄을 섰다. 그러나, 신기하고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던 것도 잠시. 내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더라. 아무도..... 그 줄!! 내가 섰다. 요즘 말마따나, 이게 뭥미.

 

유난히 인기가 많았던 K선배 뒤에 줄을 서서, 예쁜 친구에게 밀리고 잘난 친구에게 밀리며 눈물과 아픔으로 점철된 시절을 보냈다. 핑크빛으로 물들 줄 알았던 내 스무살의 사랑이 그후로로 오랫동안 참 많이 아팠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아니, 내가 누굴 탓하겠는가. 다른거 다 믿어도 믿지 않아야 할 단 한 문장을 믿어버린 내가 바보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열심히 줄을 섰다. 그 줄이... 참~~~ 안줄더라..

 

 

Posted by 슈테른

쉼 없이 웃고 웃었던 내가 그리워 오래된 앨범을 펼쳤다. 그리고 뜻밖에 사진 한 장을 만났다. 잊고 있었던 한 때. 그 남자의 팔찌를 차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는 “지금은 곁에 없지만 언제나 네 곁에 있는 거야.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해.” 하며 자신이 차고 있던 남색 팔찌를 풀어 내 손목으로 옮겨와 채워줬다.

 

lovers and lautrec

 

그와는 만난 지 한달 만에 헤어져야 했다. 일년 뒤의 만남을 기약했지만 서로를 뒤로 하고 아주 멀고 긴 일년 뒤를 기다리는 것은 슬프고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매일같이 마치 주문을 외듯, 마술을 부리듯, 기적을 부르듯 그 팔찌를 품에 지녔다. 팔찌는 그를 만지고 보고 안는 듯해 작은 위로가 됐다.

 

그와 만난 3여 년 동안 우리가 눈을 맞춘 건 몇 달이 채 안 된다. 하지만 하루가 24시간이라 25시간씩 국제전화를 했던 우리는 주어진 온 시간을 서로에게 할애했다. 돌이켜보면 한가지에 모든걸 걸었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미소가 아른거리고, 항상 잘 지냈으면 좋겠고, 우연이라도 마주친다면  그때의 너와 내가 돼 개구쟁이 웃음을 주고 받을 것만 같다. 이 모든게 원 없이 사랑하고 아낌없이 다 줬기 때문이다.

 

내가 한 사랑이지만… 참 잘했다.

Posted by 슈테른

참… 요즘은 ‘굿 키서 Good Kisser’ 같은 로맨틱한 것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어 이 매력적인 블로그에 포스팅을 못하고 있었는데.. 슈테른 양이 가을을 타는건지 뭐가 바쁜건지 너무 오래 방치시켜 어렵사리 달려들어야겠다.

 

 

음..최근 내 고민이기도 한 결혼 생활 속 ‘사랑’ 에 대해 얘길 해볼까. 흔히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조언이나 덕담 삼아 건네는 “결혼해서 살아봐라.” 라는 말 속엔 뼈가 있다. 그게 바로 ‘현실’이다. ‘결혼은 곧 현실’ 이라는 얘기가 괜히 떠도는 게 아닌 이유다.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현실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지만, 나는 어쩐지 그것과 조금 먼 삶을 살았었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이를테면 빨래를 개고 널고 하는 것, 행주를 삶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마실 물을 끊이고, 찬 밥을 처리하고, 냉장고 냄새제거재를 점검하는 따위의 일상을 몰랐다.

 

다시 태어나도 사랑하고픈 그와 하루도 떨어지기 싫어 감행한 ‘결혼’ 이후 매일같이 살 비비며 사는 게 꿈처럼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행주는 빨았니? 빨래는 세 번씩 헹궜어? 변기 때 벗기기엔 X락스가 낫지 않을까.” 이런 소소한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삶이 결혼이었다. 이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고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집에 살면서 떨어질 일이 없으니 한번 더 안아주고 두 번 더 쳐다보고 세 번 더 뽀뽀하고 네 번 더 볼 비비는 것은 우스울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 생활에서 이런 관심과 표현이 생활에 녹아 들게 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급기야 어쩌면 불가능하거나, 절반의 포기 후에나 만족이 가능하거나 또 어쩌면… 이 모든 게 사치일 수도 있다는 우울한 생각에 다다른거다.

 

문득 우리의 삶이 그저 공간의 공유로만 느껴지는 어떤 날이 되면, 나는 마구 히스테리를 부리다 훌쩍 집을 나가 동네를 배회하곤 한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이미 잠든 남편의 깊은 숨소리를 귓등으로 흘려 보내며 더욱 어둡고 푸르스름한 새벽을 보낸다. 아이가 생겼으니, 나의 고민은 더 커졌다. 이제는 “아기가 오늘은 젖을 잘 먹어, 응가를 한번도 안했는데 걱정이네, 예방접종 가야하는데 병원 예약해 놓을게.” 라는 육아 대화만이 수북이 쌓여간다.

 

이쯤 되면 한번 더 안아주고 두 번 더 쳐다보고 세 번 더 뽀뽀하고 네 번 더 볼 비비는 짓은 누가 들으면 한심하다 할지 모르고, 어쩌면 마음보다도 육체적으로 고단한 짓이며.. 깜빡 잊을 수도 있는 대수롭지 않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 존 레논을 닮은 나의 로맨티스트적 성향은 지금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Posted by 슈테른

A Couple, Fernando Botero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고 흐느낀 밤이 지났다.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내 자신이 안쓰러운 마음도 크다.

 

숨찬 소란 뒤에도 술기운에 취해 금새 잠든 상대를 견디기 힘들어 늦은 밤 집을 나와 거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좇는 ‘사랑’의 정체는 뭘까 하고. 상대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언제나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사랑일까. 이해 구할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것이 사랑일까. 불현듯...어쩌면 많은 배려들이 상대에겐 구속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안어울리게도 배려와 집착이 혼재 된 서투른 행동들을 뜨거운 사랑으로 이해해 주었던 옛 애인이 떠올라 쓸쓸해졌다. 인연의 선택이 후회되는 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후회로 생각을 매듭지면 곤란한 법. 긍정에 닿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긍정과 닿기 위한 노력

 

둘 모두가 지금 우리가 나누는 것을 ‘사랑’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부딪치고 격렬하게 대립한다. 이것이 단지 사랑의  ‘방식’ 차이라고 여기고 서로 잘 맞추면 되는 것이지 하며 쉽게 대응하는 우리에게 해.피.엔.딩.은 진정 찾아올까.

 

사랑 ‘방식’의 궁합이란 게 존재할지 모른다.  손등이 손바닥과 마주친다고 박수 소리가 나지는 않으니까. 예를 들어, '마음'이 아프다 했을 때, 어디가 어떻게 얼마만큼 아픈지 얘기해보라고 묻는 것과 상대의 아픔을 나누고자 그저 꼭 안아주고야 마는 것. 둘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과 행동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더 나은 궁합은 후자가 아닐까. 하지만, 가끔 손바닥에 손등을 가져와 부딪힌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사랑의 하나로 받아들인다면 그것 역시..훌륭한 궁합이 되겠지.

 

이렇게 뒤집어 생각하니 많은 문제가 나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을 다 줄 것 같은 따뜻한 손길로 만지고 쓰다듬고 뽀뽀하길 수 만 번 반복해도, 그놈의 ‘사랑’은 너무 빨리 고갈됐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거리가 먼 것도 문제였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 가슴이 받아들여준다면 덜 서운하고 덜 아프고 덜 힘들것을...

 

여전히 나는 나의 사랑 '방식'이 상대에게 하늘을 나를 듯한 행복이 되어 그대로 똑같이 되돌아오면 참 좋겠다. 이런 내 자신이 부끄럽고 안타깝지만 아직 치유되지 않은 나는 그대로 이기적인채 머무는 듯 하다. 그렇다고 <클로져>의 나탈리포트만처럼..”나 이제부터 널 사랑하지 않을래.” 하며 훌쩍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여기 일산에서 지금의 사랑이 긍정과 닿도록 더욱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

 

어쩌면..사랑을 잘 알지 못하고, 잘 하지 못하는 건..내 자신일지 모르니까.

Posted by 슈테른

영화 <Before Sunrise>와 <Before Sunset>에는 놓쳐도 그만인 장면이 없다. 두 남녀의 수다와 몸짓, 눈빛, 그들 뒤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주변 그림. 한 백번쯤 보면 아주 작은 것까지 다 내 마음 안에 담아낼 수 있을까.

 


그 중에서도 나는 <Before Sunrise>의 첫 장면과 <Before Sunset>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사랑하는데, 특히 두 사람이 처음 만나 기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첫 장면은 (나의 영원한 로망이 담긴) 최고의 장면이다. 첫만남의 짜릿함, 설렘, 긴장감. 아.. 생각만해도 떨린다.

 

영화 <비포선라이즈>, 기차에서의 첫 식사!

 

그런데, 왜!!!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로맨스는 영화 속에 있거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냔 말이다. 홀로 떠난 나의 여행에서 함께 돌아오는 것은, 외로워보이는 셀카뿐이다. 젠장!

 

민박집 내 방에서..너무 심심한 나머지.. 이거 셀카다. ㅋㅋ

 

추웠다. 계절탓은 아니었던듯. 흑흑.

 

정말 즐거웠다구!

 

셀카 포즈는 거기서 거기다. 표정으로 변화를 주는 수 밖에! 여기는 지리산! 야호~

 

그래, 여행에는 '로맨스' 말고도 여러가지가 요소가 있는 법! 비록 로맨스가 빠져있으나 즐거웠던 나만의 여행이었으니 많이 아쉬울 것은 없는 여행이었다, 라고 위로해본다.

 

영화는 현실이고, 현실은 곧 영화이니 나에게도 언젠가, 여행의 로맨스 하나쯤 생기지 않을까. 그게 꼭 뭐 '새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 현재 연애중. 정치적 발언맞음.ㅎ)

 

 

 

Posted by 슈테른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저를 만지고, 침을 넘기기도 힘들정도로 경직된 목 뒤로 음식을 넘겨야 한다. 또한, 행여 밥풀이 입 언저리에 붙지 않도록 끊임없이 냅킨으로 입가를 매만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애 초반 식사는 이래서 '조금' 힘들다.


*


사랑을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찰나의 연인 앞에 시골 인심이 가득 놓였다. 그릇에 차고 넘치는 밥을 보며  두 사람은 멋적은 웃음을 교환한다.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없는 밥을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싸이더스 /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나는 연애를 할 때면, 늘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상대를 만나기 전부터 긴장감과 설렘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쉴 새 없이 뛰는 탓일까. 무언지 모를 묘한 공기로 꽉 들어찬 가슴 아래 공간으로 또 다른 포만감을 안겨주는 것은 과식이나 다름없다


*


그 놈의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하지!' 되겠다. 사랑은, 끊임없이 밥을 짓는 신비로운 마법의 전기밥솥이다. 우후훗.


 

Posted by 슈테른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칼릴 지브란 -



머리부터 발끝까지 함께하되,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지는 않는 것. '나'와 '너'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아니 '하고 싶은' 사랑이다. 그 때문에, 나와 사랑을 하던 어떤 이는 너무 자유롭다 못해 마음까지 자유로워져 버렸고, 또 어떤이는 늘 나를 불안해했다.


저마다 생각하고 바라는 사랑이 달라, 세상의 수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하면서도 그렇게 애태우고 다투나보다.


사랑을 하기 전에는 마음을 얻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려야하고, 연인이 되어서도 애태워야 하고, 못견디겠다 싶어 헤어진 이후에도 상처를 남기는, 그 놈의 사랑.


뭐 좋은게 있다고..., 나는 오늘도 사랑을 찾는다. 그 누군가는 나와 함께 거리를 두고 서 있을 수 있는 '기둥'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Posted by 슈테른

"우리, 그냥 예전처럼 편한 친구로 돌아가자."
"…………그래."


왜 우리가 그냥 친구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천 개쯤 대답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묻지 않았다. 그리고 말없이 절반의 눈물은 흘리고, 절반의 눈물은 삼키며 소주 두 병을 나눠 마셨다.


술집을 나서는데 내가 삼킨 절반의 눈물이 하늘에서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그 사람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 비겁하게 비를 피하며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우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비에 젖은 뒷모습을 보이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끝까지 덤덤해 보이고 싶었던 나의 알량한자존심. 우리는 그렇게 걸었고, 그렇게 싱겁게 헤어졌다.


영화 <행복> / 이별 뒤.. 숨이 차면 죽을 수도 있는 그녀는..차라리 죽겠다며 뛰고 또 뛴다.


집으로 오는 내내 펑펑 울었다. 가슴을 꼭 움켜쥐었다. 내 생에 가장 긴 고통의 시간이 될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 한 켠에 앉아 계속해서 울었다. 그렇게 울고, 또 울다가 나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와서 눈을 떴고, 밥을 챙겨 먹었다. 사랑은 그렇게, 하룻밤 꿈같이 지나가 버렸다.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평일 아침. 관객이 거의 없는 넓은 영화관. 작은 의자 위에 무거운 몸을 웅크린 채, 스크린을 보며 다시 한 번, 하염없이 울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며, 나는 뼛속까지 아픈 고통을 참아냈다.

영화가 끝났다. 봄날이 갔다. 나의 사랑도 지나갔다. 극장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봄은 또 올 것이라고, 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힘내라고 다독여줬다.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봄은 꼭 온다. 그래서 모두가, 죽을 것만 같은 이별을 겪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 죽을 것 같은 이별 뒤.. 한참을 지나.. 그는 웃었다.


 

2002년 어느 날의 기억.
봄은..., 정말로 또 왔다.....

 
Posted by 슈테른

"엄마한테 회초리 맞을래, 아니면 2층에 가서 소금 받아올래?"
"소금 받아 올게요. 엉엉엉 …."


@한국일보 / 나는 키 대신 바가지를 뒤집어 써야했다.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는 편이 아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그냥 걸레로 닦아 버리고 앞으로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기억이 없을 수는 없다.


부끄럽게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살았던 나는, 뒤쳐진 생리감각의 발달과 달리 일찍 이성에 눈을 떴다 -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이 이때부터니까 -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던걸로 기억된다.  학교에 늦겠다며 엄마가 나를 마구 흔들어 깨웠는데, 아무리 깨워도 내가 꼼짝도 하지 않자 엄마는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을 확 걷어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나 평화롭게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순간 버럭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불에 오줌을 싼 것이다. 또!


화가 난 엄마는 마구 야단을 쳤고, 어깨였던가 등이었던가…., 아무튼, 몇 대 맞았던 것 같다. 그러다 엄마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나에게 이상한 제안을 했다. 이대로 엄마한테 회초리로 더 맞을 것인가. 아니면 2층 주인집 할머니에게 가서 소금을 받아올 것인가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매가 무서웠던 나는 소금을 받아오는 일이 창피한 일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소금을 받아 오겠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키 대신 주홍색 바가지를 머리에 얹어주고 얼른 다녀오라 재촉했고,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거리는 채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우느라고 할머니에게도 제대로 내가 온 이유를 설명하지도 못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바가지를 뒤집어쓴 것을 보고 호호 웃으며 얼른 소금을 내주었다. 그리고 내 몸에 뿌리기까지 했다. 그래야 다음에 안 그런다나 뭐라나. 그렇게 나는 소금을 받아왔다.

 

@daum카페/빛그림 사진여행/해돋이

할머니에게는 잘생긴 손자가 하나 있었다. 우식이 오빠라고. 나보다 4~5살 정도 많았는데, 쭉 빠진 다리와 날카로운 눈매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어쩌다 등굣길에 오빠를 만나게 되면 같이 가자고 쫄래쫄래 따라가곤 했었는데, 오빠는 그런 내가 부끄러웠는지 따라붙을수록 걸음을 빨리하곤 했었다. 나는 끊임없이 "우식이 오빠! 같이 가!"를 외치며 거의 뛰다시피 걸음을 내디뎠지만, 학교가 가까워질 때면 오빠는 이미 저만큼 멀어져서 150 미터쯤 앞서 있었다. 멋진 우식이 오빠가 바로 옆 중학교로 우회하는 뒷모습을 그냥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 우식이 오빠가 있는 2층에 가서 이불에 오줌쌌다고 소금을 받아 온 것이다. 엄마한테 맞는 게 무서워서 소금 받아오기를 택한 것인데,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를 보는 순간 후회했다. 아, 우식이 오빠가 있었지. 제발 날 보지 않기를!


우식이 오빠가 그런 나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건이 2층 집 식구들 사이에 회자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후회된다. 이 한 몸 잠시 회초리로 버티고 말 것을 나는 왜 소금을 받아오겠다고 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나는 이불에 오줌을 싼 기억이 없다. 엄마는 소금 효과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우식이 오빠 효과' 다. 엄마한테 맞기도 싫고, 바가지를 쓰고 우식이 오빠를 만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니 말이다.


그럴 수 없겠지만 잠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엄마에게 회초리를 맞고 싶다. 엄마가 자주 애용했던 기다란 구둣주걱의 압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우식이 오빠랑 '딱 한번만' 나란히 등교하고 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나는 이사를 갔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우식이 오빠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 길을 가다 먼 발치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오빠는 나를 못봤지만, 내 눈에는 아직도 생생하다. 까까머리가 아닌, 단정하게 자른 생머리. 걸음을 옮길때마다 사뿐사뿐 날리던 부드러운 앞머리칼을 지녔던 오빠의 모습. 이 글이 돌고 돌아 우식이 오빠 앞에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꼬마가 있었구나, 하며 우식이 오빠가 피식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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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슈테른

분명히 나란히 누워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그가 침대 끝 저만치에 누워 있었다. 누구처럼 ‘나, 이 사람을 200년 동안 사랑하리라’는 다짐을 속삭이기에는 너무나 로맨틱하지 않은 거리. 그냥 그렇게 누워 잠시 눈을 껌벅거려본다.


꼭 껴안은 채 눈을 뜨고, 눈앞에 보이는 그의 입술이 너무 사랑스러워 살짝 포개던 촉촉한 기억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내 팔 한 짝의 길이만큼 벌어진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오래전. 뼈가 으스러질 것처럼 세게 껴안고 잠들어가던 찰나의 순간. 내가 이러다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행복해서 현실이 오히려 꿈같았던, 그래서 한순간 손을 놓으면 안개처럼 사라질까봐 불안해했던 시간. 그와의 만남이 환영이 아니기를 매일 밤 잠들기 전,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했었다. 이것이 정말 꿈이라면, 깨지 않게 해주세요. 이것이 현실이라면 저에게 영원을 주세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바람을 중얼거리며.


영화 <봄날은 간다>의 한 장면

 

그게 그렇게 오래된 일이었던가? 더는 숨이 막힌다는 이유로 세게 껴안지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 행여 그대로 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도, 어느 새부턴가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끝없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일 것 같던 하루가 날마다 현실이 되어갔고, 침대에 누우면 기도는커녕 숨고를 시간도 없이 3초 만에 잠들어버리는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침대 끝 멀리 보이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세월 따라 변해버린 사랑의 모습이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그랬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거라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나이를 먹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사람도 변하고 주변도 변해간다. 사람이 세상의 모습을 바꾸기도 하고, 그 바뀐 세상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한결같다. 그냥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어느 순간 처음이 그리워지고, 그래서 그런 날들을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뿐이다.


그날 아침. 멀리 떨어져 누워 있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 위에 놓인 것은 시간이 선물해준 농익은 사랑이었다. 닭살 돋는 사랑의 속삭임 대신 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파바로티의 노래도 그보다 아름답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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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슈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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