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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12 이제 피임은 내게 맡겨줘~
  2. 2009/04/17 그들만의 '피임'세상 (1)


콘돔 해야지?
아니, 오늘 괜찮아.
왜?
안전한 날이야.
... 정말?
응.


뜨겁게 타오른다 싶을 때 이렇게 한 번씩 김을 빼는 게 우리의 래퍼토리가 된 지도 꽤 됐다. 이제는 그게 꼭 싫지도 (그렇다고 좋다는 뜻은 아니고) 않지만, 콘돔을 찾고 뜯고 착용하기까지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멍. 때리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익숙해진 ‘김뺌루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피임’을 위해 피임약을 먹어보자며 스스로에게 결심하기까지는 이런 이유가 숨겨져 있을지도.

콘돔 해야 돼.
안 해도 돼.
왜?
나 피임약 먹고 있어.
응?
내가 약 먹는다고 콘돔 안해도 돼 이제.
...


그도 처음엔 완강하게 반대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기가 무섭게 에이, 안돼. 라고 했다. 예상했듯 몸에 좋지 않을 거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이런 반응에 날 걱정하는 당신, 이라며 은근한 감동을 받고는 작은 논쟁조차 벌이지 않고 그 계획을 잠시 미뤘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먹는 피임약에 관심을 뒀다. 애초에는 피임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지만, 생리주기와 생리통, 월경전불쾌장애증후군, 여드름치료 등등 피임약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의 이점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 피임약 복용기: 이 매스꺼움, 혹시 부작용?

그리고 드디어 결심이 섰을 때, 이번엔 그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서 약 복용의 첫 날을 맞았다. 어차피 내 몸은 나의 것,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판단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날 보호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이라는 사실에 의지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피임약은 언제부터 먹은거야?
지난달부터.
괜찮데?
응, 다 알아보고 먹는거지. 이제 피임은 내가 할게~ 걱정 끊어. 으하하.


처음과 다르게 크게 걱정하거나 반대하는 내색이 없다. 워낙 내 결정을 존중해 주는 편이긴 하지만, 언뜻 아, 앞으로 어두컴컴한 방안 구석의 서랍을 허겁지겁 뒤질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해하는 것도 같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믿어 주는 것도 같고.

Touch by Marrie Bot


나처럼 바람 한 점에도 마음이 하늘로 갔다 땅 안에 묻혔다 하는 인간형은,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데 아이가 생기면 그것도 축복이라며 태도로 당당히 섹스를 하는 남자도 멋지고, 네 몸이 내 몸이 아닌데 조심해야 한다며 피임을 위해 어지간히 애를 쓰는 남자도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자에게 기댄 채 몸을 지켜야 할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와 내가 이루고 있듯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믿고 지켜주는 게 최선이 아닐까.

<사랑, 그 환상의 물매>라는 책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조심스럽게 밀쳐두고, ‘피부’와 ‘말’로 연애하라고. ‘피부’와 ‘말’은 연하디 연한 것이니 부디 ‘연하게’ 연애하라고.
 
이 대목에 빨간 스티커를 붙여 놓고 과연 ‘피부’와 ‘말’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그 뜻을 흐릿하게나마 헤아린 요즘. ‘피부’로 연하게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고 능동적인 ‘피임’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가 아닌 나 와의 사랑을 위해 피임약 복용은 꽤나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피임약 복용 1달째. 나의 선택에 지독한 확신이 든다.







Posted by 애플's
<위기의 주부들> 의 가르시아가 넓은 정원이 한 눈에 보이는 아담한 욕조에 몸을 담근다. 나른하게 몸이 풀리자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이 닿는 작은 서랍을 열고 알약 하나를 입 속에 넣는다. TV를 보던 나는 흐름 상 그게 피임약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왠지 목욕과 피임약이라는 '낯섦' 에 시선이 멈췄다.


고백하면, 피임약을 매일 한 알씩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게 된 나는 올해로 서른이다. 피임약의 존재는 알았으되 잠자리 다음 날 딱 한번만 약을 구해다 복용하면 되는(응급 피임약) 줄 알았다. 그 약이란 게 산부인과 처방전 없이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으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런 무지함으로 위험천만한 임신과 피임의 경계 길을 십 년 넘게 걸어온 셈이다. 나름의 방법은 있었다.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염두해두고 그 날짜를 잘 표시해 뒀다. 어쩌다 빨간 색칠이 입혀진 날 느닷없는 뜨거움과 마주칠 때면 곤란했지만 상황마다 적절하게 대처해 문제를 잠잠케 했다. 콘돔 역시 유용했지만 그건 이상하리만큼 남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가 원하면' 내지는 '그가 갖고 있다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매일 꼬박 한 알의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원치 않는 임신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스스로 지키는 서양 여성을 보고있자니 동시대를 사는 내가 새삼 나약하게 느껴진다. 단 한번뿐인 인생, 즐거움을 쫓는 노련하고 능동적인 항해사가 되고싶은데 피임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일만 급급하게 해대는 갑판원 같아서 말이다.  

런던에서 머물던 스무살 무렵 온갖 펍Pub 의 여자 화장실마다 콘돔 판매기가 놓여진 걸 보았다. 아니 콘돔과 콘돔 판매기를 동시에 처음 보았다. 당시엔 부끄러워 발음만으로 얼굴이 벌개졌던 ‘콘돔’을 또래의 친구들은 뽑기처럼 뽑아내 핸드백 속에 넣고 당당하게 남친을 만나러 가는구나, 역시 런더너 Londoner 들은 완전 쿨!하구나 싶어 한껏 상기됐던 기억. 그 후로 10년의 세월동안 나는 단 한 차례도 스스로 그것을 준비한 적이 없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구석구석 존재하는 문화적 차이가 한 몫 했을거다.) 이런 나인데 가르시아가 보여준 '먹는 피임약'은 더욱 아득하게 멀다. 피임 성공률 99% 와 각종 암 발생율 감소 그리고 여드름과 다이어트에까지 미치는 놀라운 부가적인 해택이 확실하데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이건 '약'보다는 '자연 치유'의 기다림을 선호했던 우리내 문화 속에서 자란 탓일 지 모른다. 한 달의 27일 동안 연속으로 한 개 얄약을 집어 삼킨다는 건.. 그래서 내게 아직은 어려운 일이다. 아쉬운대로 지갑 속 달력과 색연필이라도 챙겨 넣고 다녀야겠다.


Posted by 애플'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