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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23 나도 누군가에게는 첫사랑이었다 (4)
  2. 2008/07/18 그가 결혼한다 (2)
  3. 2008/07/16 나의 첫사랑은 현재 진행형? (14)

황군이 떠오른다. 찬 바람을 맞으며 가로등불 아래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던 황군. 인생의 8할이 슬픈 사랑의 기억으로 얼룩져 있지만 얼마되지 않는 2할의 낭만적인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이 깊은 시각. 문득 나를 잠못이루게하는 황군. 잘 지내고 있니?

 

 

*

 

황군과는 그렇게 친하지도 친하지 않지도 않은 그저그런 사이였다. 같은 동아리 친구이기는 했으나, 변변하게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한 미적지근한 친구였다.

 

딱 한 번, 황군과 뮤지컬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러 간적은 있었다. 이미 고등학교때 본 뮤지컬이었지만, 황군의 공연 관람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 건, 꽤 괜찮게 보았던 공연을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단 둘이 보러 간다고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기에 흔쾌히 황군의 제안에 동의를 표했다.

 

동아리 선배들과 함께 학교에서 나와 귀가하던 중, 우연히 좌석버스에서 황군 옆자리에 앉게 된 나는 황군의 뮤지컬 관람 제안에, 좋다고 환호하며 앞,뒤,옆으로 앉아 있는 모든 동아리 사람들에게 다같이 보자고 떠들어댔다. 니들끼리 봐라, 나는 별로 관심 없다며 사양하는 선배들은 이미 황군이 나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한참이 지난 이후에야 들었다. 나같은 눈치쟁이가 몰랐다면 믿겠냐마는 나는 하늘에 맹새코 황군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공연을 관람한 이후에도 황군은 나에게 별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쯤 겨울방학이 막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하고 나는 외출을 했다. 집에 있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듯, 지겨운 고등학교 생활에 분풀이 하듯 계속되는 외출. 눈만 뜨면 집을 나섰고, 달이 뜨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귀가하는게 내 일상이었다.

 

어느날, 12시 좀 넘어 집에 왔을까. 주무시는 부모님이 깰까 조심스레 욕실과 내 방을 오가며 잠잘 준비를 했다. 집안의 고요함을 유지한 채 나는 스르륵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이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집에 오는 길에 받은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황군이었다. 우리집 근처에 왔다가 잠깐 보고 갈까 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직 귀가를 안한 것 같은데, 올때까지 기다릴테니 들어가기 전에 자기를 보고 가라는 내용이었다. 난 이미 집에 들어왔구먼 어디서 기다렸다는거야? 

 

그 날은 정말 추웠다. 시간이 좀 지난 메세지이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베란다 창밖을 통해 바깥을 살폈다. 저 멀리 사람이 있는듯도 하고 없는 듯도 했다. 걱정하며 잠드느니 그래도 잠깐 나가서 확인이라도 하고 오는게 낫겠다 싶어 잠옷 위에 커다란 코트를 입고 흐트러진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짙어지는 추위에 오들오들 온몸이 절로 떨렸다.

 

아파트 단지 모퉁이 가로등 아래 황군이 서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두 갈래의 길 사이에서 황군과 내가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지하철은 다니냐며, 버스는 있냐며 걱정하는 내게, 황군은 몸 뒤로 숨겨둔 꽃다발을 불쑥 내밀었다. '나 너 좋아해'

 

이보다 명쾌한 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왜 너의 집앞에 와 있는지, 이 추위에 몇시간을 왜 기다렸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도 거의 없었다. 니가 좋다는 한 마디가 황군이 하고 싶은 말의 전부였다.

 

황군은 캐나다 이민을 앞두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모두 한국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가기 위한 준비하고 있었으며, 출국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유학도 아닌 이민. 가깝지도 않은 바다 건너 저 멀리 캐나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대도 그가 고백을 해 온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대화가 오갔고, 잠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황군은 나에게 편지 한 통을 건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이불을 덮고 엎드려 황군의 편지를 읽었다.

 

가족들이 이민을 결정했을 때, 나는 죽어도 갈 수 없다며 떼를 쓰고 한국에서 혼자 남아 살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캐나다로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친해지면, 나중에서야 마음을 얘기하려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이른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황군. 너는 나의 첫사랑이라며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 녀석의 마음이 짠하게 전해져왔다.

 

 

수줍으면서도 당당한 고백을 남긴 황군은, 그 해 겨울이 끝나기 전 캐나다로 떠났고, 그 작은 고백은 나의 역사 속에 묻혀져갔다.

 

 

*

 

나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 연애를 하고, 이별 하기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황군 역시 그렇게 살고 있겠지? 한 번도 그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낀 적 없지만, 그의 고백만큼은 그립다.

 

상대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이리저리 재고, 눈치를 보다가 아닌 것 같으면 말고 느낌이 온다 싶으면 연애가 시작되는 사랑에 묻혀 지내는 중에 문득문득, 황군의 명확하기 이를데 없는 고백이 살아 돌아오는 시대를 기다린다. 아니, 그 시대는 계속되고 있지만 내 나이가 고백을 잃어버린 듯하다.

 

Posted by 슈테른

"나 결혼해. 이렇게 말 하니까 좀 이상하다. ㅋㅋ"


엠에센 창을 통해 멀리 미국땅에서 가볍게 들어온 타이핑..  'ㅋㅋ’'이 눈에 밟혔다.  'ㅠ.ㅠ' 또는 '-.-' 정도였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나는 키읔에 정체모를 서운함을 느끼고있었다. 고작 키읔에..


그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닿으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내 처음 사람이다. 우린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다. 서로 해야 할 것들이 넘쳤던 시절이었다. 서로에게 욕심을 내자니 다른 욕심이 보였고, 그저 버리자니 아까웠다. 좋아하는 마음이 하늘을 찔러 숨이 찰 지경이었는데 그 감정을 현실 안에 녹이는 법을 몰랐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바라볼 수 없어 꽤 자주 목소리를 들었고 수화기 너머로 커플 반지를 끼고 있는지 집주소는 외우는지 메일을 확인 했는지 답장은 썼는지 등등 소소한 것들을 확인했다. 행여 반지를 빼놓고 있을 때면 검지 손톱으로 수화기를 ‘톡톡’ 두드리며 반지에서 나는 소리 비슷한 것을 만들어 들려줬고, 너무 길어 잘 외워지지 않았던 집 주소는 따로 적어 전화기 옆 어느 곳엔가 항상 뒀다. 그렇게 확인주고, 안심시키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던 때였다.


그가 오랜 시간 정성들여 구워준 자신의 favorite music CD 들은 내가 홀로 떠난 첫 유럽여행 길의 유일한 친구였다. 그 중에도 그가 가장 좋아했고 나 역시 귀가 닳도록 들었던 노래가 1년여만에 재회해 함께 들어간 커피숍에서 흘러나왔을 때 서로를 쳐다보며 찌리릿해 했던 그 순간은 여전히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후 다시 연락이 닿긴 했지만 얼굴을 마주한 것은 아니었다. 공기처럼 일상이 되어버린 msn과 이메일 서너 줄 정도로 안부를 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배꼽을 누르면 “I love you! “ 대신 말해주던 곰돌이 인형의 도움으로 수줍게 사랑을 고백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엔 서로의 갈 길로 충분히 간 뒤였다. 그럼에도 그의 결혼 소식은 새로운 우울함을 선사하더라. 감정이란 게 이래서 신기한거다.


그가 건네준 장난스런 팔찌는 변함없이 저기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데...그는 곧 결혼을 한다. 나, 사랑에 냉소 짓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세상의 남자는 멋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더욱 절절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저렇게 예쁜 추억을 안겨준 처음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First Love 행복하게..잘..살아요.


 

후. 우리는 우연찮게도 밭으게 닿은 날..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수줍지만 어여쁜 첫 사랑의 기억은 우리 둘에게 친구끼리 나눌 법한 우정과 닮은 감정을 남겼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아깝고 고맙다. 잘 살자. James ..

Posted by 슈테른

내가 '서른' 이 돼서도 애인 없이 뒹굴고 있으면 구제(어떻게?)해 주겠다던 J 오빠는 내가 서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결혼을 했다. 아뿔싸. 그런데 바로 그 무렵,  내가 '서른셋' 이 돼서도 애인이 없으면 결혼하자는 놈이 나타났다. 나의 첫사랑 P.


내 첫사랑은 짝사랑이다. 키가 크고, 앤드류(그 당시 유명했던 미국 청소년 드라마 주인공)를 닮은 멋진 외모에 장난기가 많았던 친구 P는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는데, 분명히 말해두지만 다른 여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열다섯이라는 나이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었지만, 사랑이 어디 나이로 따질 수 있던가.


나 첫사랑 P

나는 P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을 겪었고, 항상 가슴 한구석이 시리게 아파서 늘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살았다. 그 친구와 사소하게 얽히는 일로 혼자서 일희일비하던 많은 날. 아련한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면, 아직도 내 심장은 쿵쾅거린다. 세월이 지난 후에도 ‘설렘’을 주는 사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그 친구를 좋아할 것만 같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적극적인 나는,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아, 열심히 연애편지를 써서 보내고 꽃다발이며 레코드판 등을 선물하는 등, 적극적인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1년 반을 넘게 쫓아다녔음에도, 나는 결국 P와 사귀지 못했고, 그 세월의 끝에 P와 나는 그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나쁜 놈.


소위 말하는 ‘문제아’(문제아가 아닌 사람도 있나?)였던 P가 어느 날 큰 사고를 치고 전학을 가게 되었었는데, 어떤 일인지 자세히 모르겠으나 너를 믿으며 끝까지 네 곁에 남는 친구가 되겠다, 는 다소 유치한 내 연애편지 때문이었을까. 항상 일방적이었던 관계가 조금은 달라졌다. 몸은 더 멀어졌으나, 수화기를 붙잡고 서로 안부를 묻기까지 하는, 마음만큼은 가까운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좋은 친구가 된 우리는, 중간에 연락이 잠시 끊겼다가 스무 살 무렵 극적으로 재회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그 친구는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지도 못하고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생활하는 환경과 관심사가 달랐지만 소주 한, 두 병을 비우는 시간으로는 우리의 풋풋한 추억을 다 얘기하기에 한참 부족할 만큼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짧은 수다를 떨고 각자의 애정전선 상태는 어떤지 확인하곤 한다.


'서른셋’이 되어 애인이 없으면 데려가겠다는(내가 물건이니?) 그 친구의 말에, 숨이 넘어갈 듯 웃어대자, 네 엄마가 너 대학에 들어간 후에 만나라고 분명히 얘기했다며 흥분한다. 엄마와 직접 얘기를 나눠봐야겠다나. 다행히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P의 이런 농담이 아쉽거나 섭섭하지 않다. 아마 P는 내가 서른셋이 되면 청첩장을 보낼 것이다. J 오빠처럼.


P와 조만간 만나 소주 한 잔 걸치기로 했다. 그리고 P는 내가 보낸 연애편지를 가져오기로 했다. 얼마나 유치할까.  내 첫사랑은 아직도 애틋하고, 설레는 현재진행형이다. 아마 끝나지도 않을 것 같다.



며칠 전, P로 부터 문자가 왔다. "33살 되려면 1년 반 남은 거 알지? ㅋㅋ" 짜식. 미안하다..  나 연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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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슈테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