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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임약'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0/12 이제 피임은 내게 맡겨줘~
  2. 2009/09/30 생리, 1년에 네 번만 할 수 있다?
  3. 2009/04/17 그들만의 '피임'세상 (1)


콘돔 해야지?
아니, 오늘 괜찮아.
왜?
안전한 날이야.
... 정말?
응.


뜨겁게 타오른다 싶을 때 이렇게 한 번씩 김을 빼는 게 우리의 래퍼토리가 된 지도 꽤 됐다. 이제는 그게 꼭 싫지도 (그렇다고 좋다는 뜻은 아니고) 않지만, 콘돔을 찾고 뜯고 착용하기까지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라 멍. 때리다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익숙해진 ‘김뺌루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피임’을 위해 피임약을 먹어보자며 스스로에게 결심하기까지는 이런 이유가 숨겨져 있을지도.

콘돔 해야 돼.
안 해도 돼.
왜?
나 피임약 먹고 있어.
응?
내가 약 먹는다고 콘돔 안해도 돼 이제.
...


그도 처음엔 완강하게 반대했었다. 피임약을 복용하려고 한다고 말문을 열기가 무섭게 에이, 안돼. 라고 했다. 예상했듯 몸에 좋지 않을 거라는 불확실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 역시 그의 이런 반응에 날 걱정하는 당신, 이라며 은근한 감동을 받고는 작은 논쟁조차 벌이지 않고 그 계획을 잠시 미뤘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먹는 피임약에 관심을 뒀다. 애초에는 피임 그 자체에 목적이 있었지만, 생리주기와 생리통, 월경전불쾌장애증후군, 여드름치료 등등 피임약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의 이점은 기대 이상이었다. 물론 부작용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 피임약 복용기: 이 매스꺼움, 혹시 부작용?

그리고 드디어 결심이 섰을 때, 이번엔 그에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혼자서 약 복용의 첫 날을 맞았다. 어차피 내 몸은 나의 것,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판단에 따르고 싶지 않았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날 보호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뿐이라는 사실에 의지하고자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피임약은 언제부터 먹은거야?
지난달부터.
괜찮데?
응, 다 알아보고 먹는거지. 이제 피임은 내가 할게~ 걱정 끊어. 으하하.


처음과 다르게 크게 걱정하거나 반대하는 내색이 없다. 워낙 내 결정을 존중해 주는 편이긴 하지만, 언뜻 아, 앞으로 어두컴컴한 방안 구석의 서랍을 허겁지겁 뒤질 필요가 없겠구나 싶어 내심 흐뭇해하는 것도 같고. 알아서 잘 하겠지 하고 믿어 주는 것도 같고.

Touch by Marrie Bot


나처럼 바람 한 점에도 마음이 하늘로 갔다 땅 안에 묻혔다 하는 인간형은,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데 아이가 생기면 그것도 축복이라며 태도로 당당히 섹스를 하는 남자도 멋지고, 네 몸이 내 몸이 아닌데 조심해야 한다며 피임을 위해 어지간히 애를 쓰는 남자도 믿음직스럽다.

하지만, 언제까지 남자에게 기댄 채 몸을 지켜야 할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와 내가 이루고 있듯 각자의 방식대로 서로를 믿고 지켜주는 게 최선이 아닐까.

<사랑, 그 환상의 물매>라는 책에서 이렇게 조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조심스럽게 밀쳐두고, ‘피부’와 ‘말’로 연애하라고. ‘피부’와 ‘말’은 연하디 연한 것이니 부디 ‘연하게’ 연애하라고.
 
이 대목에 빨간 스티커를 붙여 놓고 과연 ‘피부’와 ‘말’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었다. 그 뜻을 흐릿하게나마 헤아린 요즘. ‘피부’로 연하게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고 능동적인 ‘피임’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가 아닌 나 와의 사랑을 위해 피임약 복용은 꽤나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피임약 복용 1달째. 나의 선택에 지독한 확신이 든다.







Posted by 애플's

Virgin, Gustav Klimt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이었다. 그 날은 사복을 입도록 허락된 수요일, 나는 엷은 색 청바지를 입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배가 아파왔다. 그건 정말 이상하게, 아픈 거였다.

배가 아파...왜 이렇게 아프지... 똥배는 아닌데...
아파...아파.


육고를 건너고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모호한 위험스런 길을 지나와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그대로 뻗어 누웠다. 배를 꾹꾹 눌러도 보고 뒹굴어도 봤지만 계속계속 아팠다. 이상해..이상해...


묵직한 통증이었다. 그간엔 느껴보지 못한 배탈 이었다. 허리도 뻐근한 거 같았고 기분도 나빴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려면 밤 9시는 넘어야 했다. 아무 방법 없이 이 생경한 아픔을 스스로 견뎌야만 했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잠깐 고개를 돌렸던가. 언뜻, 벗어 놓은 청바지에 비친 붉은 자국이 보였다.

어! 이건 뭐지? 뭐가 여기 묻었지? 뭘 잘못 깔고 앉았나?


그 날을 더듬어 보면 난 참 더디게도 그것이 월경의 시작임을 눈치 챘다. 그도 그럴 것이 월경이 이맘때쯤 올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물론 학교에서 알려주는 성교육 수업 시간이 있었지만 열심히 듣지 않았고, 그러기엔 내용이 지나치게 고리타분했었다.

어쨌든, 놀란 마음 가라앉힐 새도 없이 곧장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젊고 건장한 점원오빠가 카운터에 서 있었다. 그 젊은 오빠를 보자 도무지 생리대를 가지고 계산대에 올려놓을 자신이 없었다.


나도 여자라고. 이건 여자에게 필수 용품이라고.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아, 안 돼. 난 너무 어리잖아. 아, 저 오빠보기 너무 창피해!! 


두 심정이 마구 교차됐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이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두 눈을 꾹 감고 생리대를 집었다. 쭈뼛쭈뼛 계산대로 다가갔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사이에 계산을 마쳤다.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점원오빠의 행동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설마, 저 오빠... 부끄러워하는 날 배려한 걸까. 반신반의하며 집에 돌아왔다.

그리곤.. 그것을 속옷 위에 깔고 비밀스러운 밤을 맞고 조용히 잠이 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두 번째 그 다음... 그 후로도 여러 번 생리가 진행될 동안 난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생리대도 봉지에 싸서 집 밖에다 버렸다. 그런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생리’하는 것 자체가 시종일관 부끄러웠고 또 어쩌면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굳이 유난을 떨 필요가 있을까 라고 어린 나 혼자서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 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번 붉은 출혈을 본다. 첫날과 같이 요통을 동반한 이상한 배 아픔을 겪는다. 가끔은 화가 솟구칠 만큼 신경이 날카로워 지기도 하고 어쩔 땐 참 미안한 마음으로 1년에 두 세번 정도만 생리를 하는 생리 불순인 친구를 부러워도 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한 번쯤은 안하고 건너뛰고 싶다가도 그저 일상의 하루쯤으로 별일 아는 듯 받아들이면서.

생리 주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다?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Gustav Klimt


최근, 피임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바로 생리 주기를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지금 미국에서는 세 달에 한번만 생리를 할 수 있도록 짜인 피임약 세트가 한창 유행이다.

이미 피임약 복용 인구가 50%를 넘긴 미국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이 두 쪽 나도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그 날을 (물론 나의 자궁이 건강하다는 몸의 반응이긴 하지만) 건강상 아무 문제없이 건너 뛸 수 있다는 건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피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리 주기를 결정해 두 달에 한번 혹은 세 달에 한번만 생리를 선택해 할 수 있다면 나 역시 그 길을 걸어가 보고 싶다.

지난 9월 이후 쭉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지금 계획은 휴약기를 두지 않고 (내가 복용 중인 ‘야즈’의 방식이라면 약 복용 25일 이후부터 나흘간의 위약 4알을 먹지 않고) 10월까지 쭉 피임약을 복용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내 생에 첫 생리 없는 가을을, 10월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의학상 피임약을 복용함으로써 2, 3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 까지도 생리를 하지 않아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한다. 걱정 없이 도전해 볼만 하다는 뜻이다.


이제껏 생리는,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몸의 신호였다. 그렇다면 몸의 신호에 오롯이 의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리 주기를 스스로 정하고 생리와 피임의 능동적인 방식을 선택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용기를 내야 하는 첫 도전임은 확실하지만, 지금의 나의 선택과 도전 덕분에 내 몸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주체적 여성으로써 내 몸과 한껏 가까워진 기분도 든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부터, 꼼짝없이 당해야 했던 생리주기로부터의 탈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카운트 다운... 얼마 남지 않았다.


Posted by 애플's
<위기의 주부들> 의 가르시아가 넓은 정원이 한 눈에 보이는 아담한 욕조에 몸을 담근다. 나른하게 몸이 풀리자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이 닿는 작은 서랍을 열고 알약 하나를 입 속에 넣는다. TV를 보던 나는 흐름 상 그게 피임약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왠지 목욕과 피임약이라는 '낯섦' 에 시선이 멈췄다.


고백하면, 피임약을 매일 한 알씩 규칙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 알게 된 나는 올해로 서른이다. 피임약의 존재는 알았으되 잠자리 다음 날 딱 한번만 약을 구해다 복용하면 되는(응급 피임약) 줄 알았다. 그 약이란 게 산부인과 처방전 없이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으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이런 무지함으로 위험천만한 임신과 피임의 경계 길을 십 년 넘게 걸어온 셈이다. 나름의 방법은 있었다. 규칙적인 생리주기를 염두해두고 그 날짜를 잘 표시해 뒀다. 어쩌다 빨간 색칠이 입혀진 날 느닷없는 뜨거움과 마주칠 때면 곤란했지만 상황마다 적절하게 대처해 문제를 잠잠케 했다. 콘돔 역시 유용했지만 그건 이상하리만큼 남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가 원하면' 내지는 '그가 갖고 있다면' 하는 식으로 말이다.

매일 꼬박 한 알의 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원치 않는 임신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스스로 지키는 서양 여성을 보고있자니 동시대를 사는 내가 새삼 나약하게 느껴진다. 단 한번뿐인 인생, 즐거움을 쫓는 노련하고 능동적인 항해사가 되고싶은데 피임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일만 급급하게 해대는 갑판원 같아서 말이다.  

런던에서 머물던 스무살 무렵 온갖 펍Pub 의 여자 화장실마다 콘돔 판매기가 놓여진 걸 보았다. 아니 콘돔과 콘돔 판매기를 동시에 처음 보았다. 당시엔 부끄러워 발음만으로 얼굴이 벌개졌던 ‘콘돔’을 또래의 친구들은 뽑기처럼 뽑아내 핸드백 속에 넣고 당당하게 남친을 만나러 가는구나, 역시 런더너 Londoner 들은 완전 쿨!하구나 싶어 한껏 상기됐던 기억. 그 후로 10년의 세월동안 나는 단 한 차례도 스스로 그것을 준비한 적이 없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구석구석 존재하는 문화적 차이가 한 몫 했을거다.) 이런 나인데 가르시아가 보여준 '먹는 피임약'은 더욱 아득하게 멀다. 피임 성공률 99% 와 각종 암 발생율 감소 그리고 여드름과 다이어트에까지 미치는 놀라운 부가적인 해택이 확실하데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이건 '약'보다는 '자연 치유'의 기다림을 선호했던 우리내 문화 속에서 자란 탓일 지 모른다. 한 달의 27일 동안 연속으로 한 개 얄약을 집어 삼킨다는 건.. 그래서 내게 아직은 어려운 일이다. 아쉬운대로 지갑 속 달력과 색연필이라도 챙겨 넣고 다녀야겠다.


Posted by 애플's